한미 정상외교 일정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에 직면했다.
 지난 5일부터 엿새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찾았던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 내 로즈 가든을 통역도 없이 10분간 단둘이 산책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상외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정상 간의 돈독한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상외교 뿐만 아니라 현지 기업들을 상대로 한국 투자를 독려하는 ‘코리아 세일즈’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호평을 받았고,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40여 차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터진 ‘윤창중 사태’로 이번 방미 성과는 한 순간에 빛이 바랬다. 물론 한미 양국 모두 방미 성과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지만 국민의 관심은 방미 성과가 아니라 온통 윤창중 사건에만 쏠려 있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전격 경질된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 얼굴에 제대로 먹칠을 한 셈이 됐다. 현직 대통령의 대변인이 방문 현지에서 중도 하차한 것부터가 초유의 일이지만, 그 원인에 접하면 차마 할 말을 잃는다. 그는 통역 안내를 맡은 대사관 인턴 여성사원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장과 의중을 전하는 국가대표 ‘입’이다. 그렇기에 결코 개인적인 돌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다. 엄연한 국가 행사에 참여한 고위 공직자의 이런 추태는 곧 국격의 훼손이고, 국민의 치욕이다. 더구나 첫 여성 대통령 수행 도중 벌어진 일이다. 처음에는 과장된 사실이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성추행 사실은 점차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인턴 직원이었던 피해여성과 술을 마시며 “엉덩이를 만졌다”고 이미 시인한 상태이고, 현재는 다음날 아침 여직원을 호텔방으로 불렀을 당시 알몸이었는지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은 노팬티 상태였다고 진술하고 자필로 사인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가 박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앞둔 바로 전날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귀국절차, 미국 현지 조사 도피 가능성, 청와대측의 사건 은폐 축소 의혹 등 야당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난리가 났다.  미국 현지에서 청와대 측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중요 일정을 앞둔 상태여서 불미스러운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부분은 이해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윤창중이다. 귀국 직후 민정수석실 조사에서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지만, 기자회견 때는 피해 여성의 허리를 툭 쳤을 뿐이며, 방에 부른 적도 없었다며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모든 조사와 청와대의 발표는 거짓이라고 반박하더니 아예 종적을 감췄다. 그의 계속되는 거짓말과 책임 떠넘기기는 현 정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일을 더 크게 벌일 공산이 아니라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사죄하며, 법적 판결을 기다리는 일만이 자신을 믿어준 현 정부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이 일로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지난 11일 미국 NBC의 ‘Saturday Night Live’의 한 코너에서는 미국인 엄마가 ‘한국 정부의 잘 나가는 사람’과 바람이 났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윤 전 대변인을 닮은 캐릭터와 엄마 캐릭터가 등장했다. ‘윤창중’ 캐릭터는 남매의 엄마와 사랑을 나누지만 곧 바람 폈다는 사실이 소문날까봐 남매의 엄마를 익사시키고 만다. 이후 화면에는 ‘물귀신’이란 한글 자막까지 등장했다. 중간 화면에는 알몸으로 집 한 쪽에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포착됐다.
일본의 한 방송에서도 인턴 여성과 윤 전 대변인의 엇갈린 주장을 만화로 보여주었다. 화면 상단에는 ‘성희롱 대변인’이라는 문구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Korea’ 입력하면 윤창중 관련 검색어가 줄줄이다. 여기엔 한국의 성차별 문화에 대한 지적도 있다. 13일 프랑스의 한 일간지는 “한국에서는 젊은 여성에 대한 성추행을 사소한 일로 여기는 경향이 고위층 남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남자 상사들이 회식자리에서 젊은 여성을 더듬고는 “취해서 그랬다”며 발뺌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윤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은 이미 AP통신, CNN, 영국의 데일리 메일, 일본의 교도통신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고, 지난 11일에는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까지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어느새 그는 본의 아니게 월드 스타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당선 후 첫 인사로 윤 전 대변인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으로 기용했다. 당시 이 인사는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윤 전 대변인 또한 ‘밀봉인사’ 로 숱한 구설에 올랐다. 그래서 지금 박 대통령 특유의 불통인사, 오기인사가 부른 ‘예고된 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윤 전 대변인 사례를 계기로 정부 고위직 인사의 검증 작업을 더 철저히 하고, 국민이 수긍하는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이 사건이 한국에 만연되어 있는 ‘여직원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오만함에 빠져있는 높으신 양반들의 생각을 다잡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아가 정치인들도 당리당략에 의한 무차별 공격성 발언만 일삼지 말고, 현 정부와 국익이 내재된 사건인 만큼 평정심을 잃지 말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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