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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18 과전두환

닉네임
박쫌만
등록일
2020-05-18 01:31:38
조회수
994
시민군이(그들은 폭도보다 시민군이란 명칭을 선호함) 돌과 화염볍으로 광주 파출서들을 파괴하며 순경들을 붙잡아 가서 묶어 놓고 때렸다. 도망가는 순경 집에까지 쫓아갔기에 경찰이 모두 광주 외곽으로 피하였다. 근무지가 광주인 경찰이 광주 외곽에 가서 숨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순경들은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그 다음날부터 한 명 한 명 죽어갔다. 여기에 시민군에 납치된 순경들의 생명을 구하가 위해 광주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가 광주향토사단에 시위 진압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광주향토사단의 지휘권은 광주 사람 정웅 소장에게 있었으며 타 지휘관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웅 소장이 군번으로는 당시 장성들 중에서 최고참에 속하였기 때문에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합부로 관여할 수 없었던 것이 정웅 소장의 지휘권이었다. 상황 판단, 시위 진압 시간, 진압의 강도 등은 정웅 소장의 판단에 일임된 문제였다. 따라서, 순경 살인이나 무기 탈취 등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시민군에게 물어야 할 일이요, 진압 방법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웅 소장에게 물어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대 3학년 유언비어 제조기들과 광주 시민군은 서로 죽이 맞아 "전두환 광주학살" 픽션 소설을 써왔다.

한홍구 등 픽션소설가들은 "신군부"라는 말을 무슨 요술방망이처럼 사용하였다. 실제에 있어 이희성 계엄사령관이나 황영시 부계엄사령관이나 광주사람 정웅 소장은 하나회 회원도 아니었으며, 한홍구와 운동권이 말하는 신군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픽션 소설을 쓸 때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이나 황영시 부계엄사령관"을 신군부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온갖 논리적 미끄러짐과 비약이 시작된다. 본래 광주사태는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소관이요, 육본은 치안본부 요청에 따라 행동하였기에 보안사와는 아무 관련 없었던 일이요, 전두환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던 일이 광주사태였다.

시민군이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광주 파출서들을 파괴하고 경관들에게 폭행을 가하였으면,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무기와 실탄을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였으며, 방송국과 세무소 등에 방화하였으며, 마침내 도청을 점령하였으면, 그리고 5월 18일 매맞은 경관들 중 나중 사망자가 생겨 전체 광주사태 희생자 중 삼분의 일은 군경이라면 시민군 편에서도 책임져야 할 문제는 있다. 그러나 왜 전두환 혼자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는가? 바로 여기에 광주시민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전두환의 마음이 있다.

사실에 있어서 전두환은 애국심의 화신이었다. 그는 사단장 시절에 구보 훈련 때 사병들 선두에서 뛰던 투 스타였다. 다른 부대같으면 장교는커녕 병장도 열외될 구보 훈련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선두에서 달리는 것이 그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그는 상경하애 정신이 강하였다. 대통령 시해 공범의 의혹을 받던 정승화 참모총장 수사를 군부가 원하였을 때 그가 12.12 사태 이전까지 하지 않았던 것도 그의 상경하애 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5.18 관계자들이 그와 직책상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모든 누명을 혼자 뒤집어 쓴 것은 전우애의 표시였으며, 시민군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한번도 따진 일이 없이 조용히 "전두환 광주 학살" 픽션 소설을 받아들인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광주 시민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작성일:2020-05-18 01:3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