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같이 적과 동침을 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에서는 마치 내편인 듯, 나의 모든 행동이 대단한 결단인 양 적극적인 후원 멘트를 해주다가도, 비난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가차없이 그들과 한 팀이 되어 동조를 하곤 한다. 
이민 초기에는 몇 안 되는 한인들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한인사회의 규모가 커졌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등장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들은 오히려 약점으로 이용되어 원수가 되어갔다. 죽마고우처럼 지냈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각자의 반대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상대방의 집안 내력, 여성편력, 술버릇까지 동원하면서 서로에게 흠집을 냈다. 그래서인지 우린 모이기만 하면 ‘편가르기’를 하기 위한 수다를 떨고 있다. 
 
    이민사회가 각박한 이유는 한국을 떠나 뿌리 없는 나무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만 있고 자신을 지탱해주는 근원이 없기에 더불어 사는 방법에 서툰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회에 살다 보니 각박하다 못해 정나미가 떨어질 때가 많다. 특히 뒤통수를 맞게 되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한 단체장이 사무실에 와서 타 신문사에 대한 욕을 한참을 하고 갔다. 다음날 취재를 할 일이 있어 행사장을 찾았는데, 그 회장은 침까지 튀겨가면서 욕을 했던 타 신문사와 아주 의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어제는 다시는 인사조차 안 할 태세더니, 하루만에 어찌 저렇게 태도가 돌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측근의 설명에 따르면 전날 밤 그들 사이에는 광고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야합이 이루어졌다고. 그 회장의 감언이설에 대놓고 동조를 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욕은 되도록 아껴야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요즘 한국에서는 제3지대 신당 창당건으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손을 잡기로 하면서 야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적과의 동침 사례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뭉쳤다는 것에 국민들은 다소 혼란스럽다. 안철수 의원은 2년전 대선 때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이유는 민주당이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거대정당 구조를 비판해 왔고 구태 의연한 정치를 쏘아붙였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민주당과 함께 새로운 당을 만들기로 했으니 엄청난 야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설사 그게 야합이 아니다 하더라도 야합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원인제공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야합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권력 획득만을 위한 헤쳐모여식, 정치공학적 나눠먹기로 비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안철수 의원이 계속 구태정치라고 비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권력획득, 지방선거의 승리만을 위했다는 논리로 볼 때 야합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도 하다. 그래도 참신한 안철수 신당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결국은 무릎을 꿇은 게 아니냐, 현실 정치의 벽을 느낀 게 아닌가 지적들이 흘러나온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은 두고두고 문제가 따를 것 같다. 역시 적과의 동침이 가능한 게 한국 정치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덴버 한인사회는 크게 2개의 한인회, 2개의 노인회로 편이 나눠져 있다. 이렇게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관계자들은 여전히 그 사람들이 그 사람이고, 이들은 여전히 분란의 중심에 서서 손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마치 서너명의 개인이 꾸려가는 계모임 같은 느낌이다. 지금까지 노우회관의 거처를 정하기 위해 그 사람들끼리 비밀스럽게 야합이 진행되어 왔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 한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노우회가 노인회냐고 물었다. 다르다고 답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이 어려웠다. 노우회가 회관이라는 공공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간이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외에는 어떠한 대화거리가 없다. 지난해 노우회장이 사망했고, 그 이전부터도 대외적인 행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노우회의 내부사정을 아는 이도 극소수다. 이처럼 이미 유령단체가 된 노우회를 한인회가 삼일절이나 광복절 행사 때마다 후원단체로 올리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오히려 한인회가 유명 무실한 단체의 존재를 조장하고 통합을 방해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회원도 없고, 회장도 없는 노우회가 한인회와 어떤 야합의 이름으로 묶여 있는지 동포사회는 의문스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야합을 목적으로 뭉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자신의 즉흥적인 개인 감정에 치우쳐 이 사람 저 사람을 끼워 편가르기를 하는 모양새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가 언제 어떻게 역전될 지 모를 일이다. 어제 한 말을 바꿨다고 그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오늘 뒤통수 맞았다고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기에, 적과의 동침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자만이 인생의 재미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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