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김연아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턱을 괴고 앉았지만 그녀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KBS만 나오는 필자의 집 텔레비전으로서는 김연아뿐 아니라 동계올림픽에 대한 소식을 한국방송으로 볼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미국 채널을 골라 김연아의 경기를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결국 인터넷에 김연아 1위라고 뜬 문자 생중계를 보면서 기쁨의 미소와 눈으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함께 안고 잠이 들었다. 아무리 SBS와 저작권 문제가 걸려있다고 하지만 이런 범국민적인 관심사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얼굴은 뉴스에서는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닌가. 목소리만 나오니 더 답답하다.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미국 채널은 미국 대표선수들 경기에만 치중하다 보니 한국 선수들이 나오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일이 더 없다. 이번 올림픽은 유선, 위성, 인터넷 같은 뉴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관련문제로 한 개의 방송사만이 한정 방영되다 보니, 참으로 보기 힘들다. 보기 힘들수록 더욱 궁금해지니 인터넷만 붙잡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 하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당연히 잘 싸우고 있는 우리 대표선수들이고 두 번째는 한심한 방송사들이다. 방송사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씁쓸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치닫고 있다. 대회 초반부터 우리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지만 한편에선 SBS의 동계올림픽 단독 중계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왜 SBS에서만 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다. 과정은 이렇다. 각종 국제경기의 중계권이나 올림픽의 중계권은 해당 실무자들의 협상에 의해 중계권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동계올림픽의 중계권 독점 선정은 지난 2006년 중계권을 설명하러 온 IOC의 중계권 담당자인 리차드 캐리언씨가 한국을 방문해서 KBS, MBC 그리고 SBS 방송 3사의 관련담당자에게 과거 기존의 중계권료의 약 두 배를 요구한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동안 방송3사는 중계권의 경쟁에 의한 가격상승을 우려하고 외화를 낭비하지 말자는 취지아래 스포츠 중계권에 대한 코리아풀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의 중계권료가 예상액의 두 배가 넘자 너무 비싸다고 협상액을 줄여보려는 동안 SBS가 이보다 약간 더 비싼 금액으로 단독 계약을 했다. 그래서 IOC의 동계 올림픽 중계권은 SBS가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독점 중계권을 따 낸 것이다. 중계권료는 IOC에서 요구한 금액이 3천만 달러라고 하니 이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보인다. SBS가 코리아풀제를 배제한 채 단독 계약을 한 것도 문제고, 다른 두 방송사 또한 국민적 성원에도 불구하고 뉴스 자료화면조차도 확보 못하는 지지부진한 태도와 SBS를 질타만 하는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이들이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도 SBS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이번 올림픽 중계권 분쟁에도 ‘시청자’는 없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옥의 티로 남을 듯하다.

이러한 국내 방송 분쟁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 승부사들은 얼음판 위에서 연일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참으로 대견하다. 값진 옥구슬들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5천 미터 은메달리스트인 이승훈은 1만 미터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금메달을 따냈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 선수가 실격 처리되는 운도 따랐지만 12분58초55의 기록은 올림픽 신기록이자 아시아 선수 최초의 12분대 진입으로 놀랄 만한 성과다. 피겨 퀸 연아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김연아는 그저께 열린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78.50점을 기록하며 지난해 11월 자신이 세웠던 세계 최고기록을 깨뜨렸다. 전세계 방송에서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퀸 오브 아이스 김연아’ 라는 타이틀이 장식됐다. 이런 관심에 보답이라도 하듯 정교한 애니메이션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연기를 해냈다. 이처럼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과 이상화, 이정수에 이어 이승훈, 그리고 피겨 퀸 김연아가 보여준 모습은 감동의 드라마였다.

4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기성세대들이 오랫동안 넘지 못할 벽이라고 지레 외면했던 그 장애물들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하나씩 뛰어넘고 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들에 기대되는 이유이다. 패기와 열정, 자신감과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젊은 승부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남은 경기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기원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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