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들어차는 선실에서 열일곱 살 딸이 엄마 전화기에 제 얼굴을 찍어 띄우며 말했다.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아들은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고백했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 짧은 글들이지만 한결같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 이 소식을 접하고 신문을 마감했던 수요일 저녁 사망자 수는 6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사망자는 100명이 훨씬 넘었고, 실종자는 여전히 190여명에 달한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좀처럼 울화를 삭히기가 힘들다. 이러한 심경은 부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슬픔은 깊어만 가고 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연이어 눈물이 흘러내린다. 너무 화가 나서  TV를 꺼버렸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켜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패닉상태다. 이 곳도 패닉상태다. 웃음을 잃은채 온 국민은 바깥 나들이를 자제하고 구조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서울 대공원 나들이객도 현저하게 감소됐고, 단체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는 일도 다반사다. 결혼식에도 가고 싶지 않고,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어도 신나지 않는다. 필자의 어머니도 어버이날을 맞아 떠나려고 했던 중국행 효도관광을 취소했다. 아이들 구조 소식 다 듣고 배 인양하는 것 보고 여행을 가도 가야한다며 극구 예약을 취소해 버렸다. 아이 엄마들의 충격은 더하다. 한 엄마의 인터넷카페에 적혀있는 대목이 눈물겹다.“샤워하다가, 거울을 보다가,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보다가도 눈물이 쏟아진다. 하루에 5번 이상 눈물을 쏟고 100번 이상 울컥해지고 심장이 구겨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도움을 못 주는 현실에서 죄책감이 밀려온다. 온 종일 이 사건 생각밖에 없다.”
16일 오전 8시58분께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647톤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승무원, 일반승객 등 476명이 탑승했다. 그중 75명만 구조됐고, 300명이 넘게 숨지거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종자는 점차 사망자로 바뀌고 있다 .
세월호는 침수 직후 “밖에 나오면 위험하니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했다. 승객들은 이 말에 따라 객실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대피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방송된 행동지침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차가운 바다에 생매장되었다. 침수 1시간이 지나서야 ‘침몰이 임박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고 방송했다. 이때는 이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탈출한 다음이었다. 선장과 선원 10명은 9시30분쯤 맨 먼저 해경에 구조되었다. 선장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승객인냥 병원으로 이송돼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온돌 침상에 말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선실에 있던 학생과 승객들이 뒤늦게 빠져나오려 했어도 전기가 나가 깜깜한 데다 가파른 통로를 간신히 기어오른다 해도 바깥쪽으로 밀어야 하는 철문을 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승무원들 안내가 아니면 탈출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자기들부터 살겠다고 배를 빠져나가버렸다.
정부의 구조작업이 더뎠고, 지휘체제가 우왕좌왕했기에 피해가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장이 도망을 쳤기 때문에 비극이 극대화 된 것이다. 1912년 4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 사고 때는 승객, 승무원 2224명 가운데 32%인 710명이 구조됐다. 타이태닉의 선장은 배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 후 자기는 배로 돌아갔다. 일등항해사는 구명보트를 풀어 승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자기 구명조끼마저 남에게 벗어주고 타이태닉과 함께 가라앉았다. 이처럼 선장의 역할에 따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선장이 승객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행위는 살인죄나 다름없다.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콩코르디아호 침몰사고시 4229명의 승객이 탑승했고 이 가운데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선장은 사고가 나자마자 승객들을 버리고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해 검찰은 선장에게 총 2697년형을 구형했다. 세월호의 희생자는 여기에 10배가 되니 세월호 선장은 어떤 처벌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죽어버린 아이들을 앞에 두고 침몰원인이 무엇인지, 선장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어떤 운항 규칙을 어겼는지 따지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안전점검을 제대로 하고,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메뉴얼을 다시 정립하고, 신속한 구조체제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어떤 다짐도, 선장 및 해운사의 어떤 사과도 당분간 귀에 들어올리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선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함께 슬퍼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듯하다. 정신빠진 선장으로 인해 이런 참담한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괴로울 뿐이다.
우리 한국인은‘빨리빨리’덕에 단기간 고도성장을 누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속성과 편법도 당연시하는‘대충대충’과‘설마설마’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역시 선장과 승무원이 원칙대로 행동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어떻게 되겠지’하는‘대충대충’문화를 뼈아프게 반성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배가 기울기 시작해 침몰하기까지 두 시간 넘도록 어른들은 뭘 했나. 생존자 집계조차 못하고 허둥댔다. 배에 갇힌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지켜주지도 구해주지도 못한 모든 어른들은 죄인이 되었다. 차디찬 바다에 아이들만 두고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부모들과 함께 온 국민은 오늘도 기적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 기도하는 두 손에 필자의 두 손도 함께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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