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35회 문예공모 중 시 부문에 콜로라도주에 거주하는 명광일(53)씨가 당선됐다. 명씨는 죽음의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밖, 낯선 기억의 흔적’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명씨는 지난 7월2일에 LA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명씨는 당선소감을 통해 “돌아보니 록키산을 마주하며 산지가 어언 22년이 되었다. 동굴 속에 들어 지낸지도 7년이 되어 간다. 시심은 산 속에 있고, 시상은 세상을 향하고, 시감은 하늘과 땅을 오고 간다. 늘 곁에 있으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명씨는 지난 2007년 4월 중풍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3주를 보내고, 42일간 입원해 있으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명씨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받아들은 죽음을 ‘무(無)’라고 표현했다.

   명씨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 직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낯섦과 외로움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시에서 명씨는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수의, 환자복, 눈물’ 등으로 전하고 있다. 명씨는 이번 공모전에 순수서정시에 가까운 ‘피난민촌’, 리얼리즘에 가까운 ‘안개’, 관념주의적인 ‘밖, 낯선 기억의 흔적’ 등의 세편을 출품해 이중 ‘밖, 낯선 기억의 흔적’이 당선되었다. 명씨는 2013년 5월 재미시인협회에서 ‘모든 일련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미국에서 처음 등단했다. 연이어 같은해 12월, 한국의 <이해조 문학상>에서 ‘밤’이라는 시로 장려상을 수상, 계간지 <인간과 문학>에서 ‘카페 쿠바’라는 시로 대상을 수상해 시인으로 당당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밤’이라는 시는 반지하 방에서 밤을 지새면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엮은 것이며, 명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낀다는 ‘카페 쿠바’는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 문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명씨는 “평소 일기쓰는 것을 즐겨하다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병상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병상일기가 계기가 되어 시를 본격적으로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시와 소설을 써 왔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서울 디지털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14 현재 그는 올 연말에 출간 예정인 소설 ‘미국 무당’을 집필 중에 있다. 본지는 명광일씨의 동의를 얻어 앞으로 명씨의 작품을 싣기로 했다. 그 첫번째 작품으로 ‘2월, 밤의 유배지 3’을 게재한다.

   명씨는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겨울, 남해의 밤. 여관방 유리창에 비친 빗물이 가로등 불을 휘감고 흐르고 있었다. 다채로운 상념들이 뇌수에 감겨 심장에 전해져 왔다. 낮에 우리는 ‘우리’라는 울타리를 두른 친구들을 만났다. 당대의 마법에 걸린 친구들의 말 속에 잔잔한 분노를 가져왔다. 오랜 단절이 전해준 말들은 언어 이전에 살기로 전해진 야생의 몸짓 같았다. 그리하여 단절하고 지내야 하는 친구가 되었으며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를 썼다.”  

2월, 밤의 유배지3

다시 밤
창밖에 펼쳐진 불빛을 보고 알았네
네모난 유리창에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알았네
거리는 가로등이 빗방울을 솎아내는지
줄줄이 공중에 매달려 사선의 빗방울을 힘차게 비추고 있네
내 방의 불빛도 먼 불빛과 유리창에 섞이기로 하지
귀는 분명 바다에 왔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그리하여, 라는 말만
내 방의 왼쪽 벽을 등지고 앉아 있네
구석에는 선인장이 꽃을 피웠네
이 방의 누군가 건조한 중독에 살다 버린 사막에서
저 절묘한 타이밍이 만들어낸 꽃은 낙타처럼 느리게
또 다른 사막을 걷고 있을 것인데
조정의 노를 젓듯 방바닥을 가로질러 지네가 기어가네
축축하게 젖은 상념 붕대를 감고 사면의 벽을 돌아 둥둥 떠가네
마침내 오해와 오해에서 비롯된 사실 하나
오늘 밤의 진리로 조여진다고 하지
이처럼, 여기서 인가, 아니면, 등이 다시 또
벽에 번지고
나는
치사량의 꿈을 입에 머금고 바닥을 더듬어 컵을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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