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이민법 개혁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과 맞물려 ID카드 발급문제가 개혁입법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상원의 찰스 슈머(민주.뉴욕), 린지 그레이엄(공화. 사우스 캐롤라이나) 의원이 초당적 차원에서 준비중인 이민법 개혁법안에 ID카드 발급이 핵심내용으로 포함됐다. 언론에 알려진 법안 초안은 미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지문 혹은 손등의 정맥과 같은 `생체정보'가 담긴 ID카드를 발급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불법 이민자들이 더 이상 미국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슈머 의원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ID카드 발급이야말로 이민문제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것"이라며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와도 (ID카드가 없어서)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은 불법이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머 의원은 그레이엄 의원과 함께 이번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면담, 자신들이 추진중인 법안내용에 관해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슈머 의원 등은 8일 회동할 계획이었으나, 그레이엄 의원의 항공편 문제로 만남을 연기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이민법 개혁의 핵심조항으로 ID카드 발급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데 대해 미국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크리스 캘러브리즈 법률고문은 "ID카드 발급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대적인 침해를 의미한다"면서 범국민 ID카드 도입은 결국 정부가 시민들을 감시,추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슈머 의원은 "지금도 우리는 `소셜시큐리티(사회보장)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며 "ID카드 발급의 취지는 위.변조를 힘들게 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슈머 의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과연 고용주들이 ID카드 체크를 충실히 하겠느냐는 사후 입법문제도 논란을 제공하고 있다.

슈머 의원에 따르면 사업장의 고용주들은 800달러를 들여 ID체크용 스캐너를 구입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복잡한 바이오 정보를 일일이 체크하는 일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 이와는 별개로 슈머, 그레이엄 의원이 추진중인 법안에는 현재 1천100만명에 육박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신분 등록을 한 뒤 세금과 벌금을 내고 기다릴 경우, 시민권을 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이 문제는 포괄적 이민법 개정을 촉구해온 히스패닉계의 입장을 거들어주는 내용이지만, 과연 공화당 쪽이 찬성해 줄지는 미지수다. 그레이엄 의원만이 공화당에서 유일하게 이런 내용의 법안에 동조하고, 법안을 추진중이기 때문이다.

미국내 히스패닉계는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 상당한 기여를 한 반대급부로 포괄적 이민법 개혁을 오바마 행정부에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문제에 정치적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히스패닉계는 연내 이민법 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늦어도 5월까지는 발의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이 이런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에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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