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큰 꿈을 꾸며 선교를 준비하던 저에게 하나님은 덴버에 교회를 세우라는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곳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 이리 저리 피할 길을 찾던 저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순수하게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최고의 헌신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2008년 10월 29일, 가족을 이끌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아무 대책도 없이 덴버에 도착했을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절대로 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믿음의 걸음을 한 발자국씩 내 딛을 때 정말 신기하리만치 섬세하게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땐 덴버한인교회를 그리고 김동욱 목사를 아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위로해주셨습니다. “동욱아, 괜찮아. 너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잖아. 내가 너와 늘 함께 있어줄께.” 덴버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웠어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덴버의 한인 사회를 배워가면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많은 신앙인들이 나그네적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왜냐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깊은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왜냐면 헤어질 때 아픔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할 말이 많습니다. 거쳐온 경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 교회 성장의 한 방법이면서 또 교회 성장의 문제점이기도 한 “교인의 수평 이동"의 대부분의 이유는 이 나그네적 신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이리저리 요동치는 배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 안으로 넘쳐오는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배는 점점 가라앉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들은 구석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아무 관심도 없으신가?” 제자들이 거센 항의를 듣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마 5:40) 문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배가 침몰할 상황이 아닌데 제자들이 죽게 되었다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굳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지 않으셨어도 제자들이 탄 배는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했을 것이기에 무서워할 필요도 당황할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 우리의 신앙이 나그네와 같습니까? 교회가 침몰할 것 같으니까 그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있으면 내가 침몰할 것 같으니까 그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무리 거센 풍랑과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교회도 나도 침몰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예수님은 동일하게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나님께서 덴버의 신앙인들에게 선포하기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를 기도할 때마다 주시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금이 간 질그릇입니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금그릇도 아니고, 유익하게 사용되는 은 그릇도 아니고, 그냥 그렇고 그런, 마지못해 사용하는 질 그릇.  그런데 그릇에 금까지 가서 사람들의 관심 밖에 난 질그릇. 아무도 관심도 받지 못하는 이 질그릇이 바로 덴버의 크리스챤 공동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이란 사실이 부끄러워 금그릇이, 은그릇이 되고 싶어 노력해보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기죽기도하고 떄로 조금이라도 반짝하면 금그릇이라도 된 듯 착각하며 교만해지기도하는 소박한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질그릇이라고 슬퍼할 일이 아닌 것은 이 질그릇이 바로 하나님의 보배를 담기위해 선택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문제는 하나님이 질그릇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금그릇, 은그릇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기에 정작 질그릇 안에 채워주신 하나님의 보배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이아몬드로 가득차있는 질그릇은 안중에도 없고 텅 비어있는 금그릇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 같습니다. 겉모습만 관심이 있는 세상은 질그릇의 가치를 몰라준다해도 그 보배를 채워넣어주신 하나님께 금이 간 질그릇은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그릇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되는 일이 있어도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인내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모른다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나를 알아준다해도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보배가 담겨있는지 들여다 보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소망과 능력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이제 자신있게 선포하십시오. “나의 삶이 질그릇같다 할지라도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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