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계의 이목은 영국에 집중되었다. 영국 연방의 운명을 가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반대하는 주민이 55%를 넘었다. 307년만에 영국 연방과 결별하고 독립국가로서 자립하려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도전은 이로써 무산되고 말았고, 영국은 다행히도 연방 분열의 격동을 피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악화된 정치의 위기가 민족국가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20여년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갔을 때였다. 영국 화폐를 가지고 찾았던 에든버러에 그들만의 화폐가 있다는 것은 다소 놀랐다. 에든버러에 있는 가게에서 영국 파운드를 냈는데, 스코틀랜드의 화폐로 거스름 돈을 내줬다. 알고 보니 영국의 파운드는 스코틀랜드에서 통용되지만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영국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냥 영국 돈으로만 통일해서 사용하지, 왜 번거롭게 별도로 화폐를 찍을까 하고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늬만 자치권을 인정받아온 스코틀랜드의 오랜 불만과 자존심이 이번 분리 독립 주민투표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스코틀랜드 외에도 지금 전세계 각국에서는 분리 독립 열풍이 불고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각 나라들이 국력을 키우고 덩치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최근 역사를 보면 분리독립의 시작은 소련연방에서 비롯됐다. 발트 3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 이어 몰도바,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등이 잇따라 독립하면서 1991년 소련연방이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소련연방의 해체는 유고슬라비아에도 영향을 미쳐 유고슬라비아에서는 1991년 분리 독립 전쟁이 발발해 결국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6개 국가로 나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그 동안 인종 혹은 민족간 갈등이 비교적 잠잠했던 국가들에서 분리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올해 들어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한 동부 도네츠크가 분리 독립 투표를 실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또 경제공동체를 발족시킨 이후 정치공동체까지 지향하던 유럽연합(EU)내에서도 영국이 독립을 주장하면서 연합체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 유럽 중 대표적 분리 독립의 격전지는 영국과 스페인이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끝나면서 한숨 돌렸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가 중심지인 카탈로니아 지역이 분리 독립을 위해 오는 11월에 국민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1714년 카탈로니아가 스페인에 무릎을 꿇은 지 꼭30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와 주민투표 실시에 합의했던 영국 정부와는 달리, 스페인 정부는 카탈로니아 주민투표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카탈로니아 주민투표가 합법적으로 치러진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카탈로니아가 분리될 경우, 재정위기에 처한 스페인 경제는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들어 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지중해에 위치한 코르시카 지방에서, 이탈리아에서는 롬바르디 지역을 중심으로 분리 독립하자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2008년에 이미 그린랜드가 주민투표를 통해 자치권을 얻었으며 국제법상으로 공식적인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벨기에서도 북부 플란더스 지방이 독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곳 미국에서도 주를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를 ‘실리콘 밸리’, ‘제퍼슨’, ‘노스 캘리포니아’, ‘센트럴 캘리포니아’, ‘사우스 캘리포니아’, ‘웨스트 캘리포니아’ 등 6개 지역으로 분리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안을 제시했던 티모시 드레이퍼는 “캘리포니아 분리안에 이미 130만 명이 서명했다”며 “2016년 11월 선거에 주민투표에 부쳐질 조건을 갖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콜로라도 역시 콜로라도 북부 지역의 카운티들 가운데 6개를 ‘노스 콜로라도’로 분리해서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주민 투표 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탈(脫)중앙화 열망’이 뜨거운 지금, 스코틀랜드 국민은 ‘민족’보다 ‘실리’를 선택해 국제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독립한 지 7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일본과 날 선 민족갈등을 벌이고 있는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투표가 끝난 후 많은 유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영국에 대한 증오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였다. 독립 찬성을 던진 사람도, 반대 표를 던진 사람도 모두 민족 자존심 보다는 하나의 국가로서 스코틀랜드의 ‘경제 미래’를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논란은 분리주의자와 통합주의자 모두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대처했다는 데 그 의미를 갖는다. 영국이 정치에 대한 소외감, 민족주의, 근거 없는 장밋빛 청사진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분리주의 운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 후 예상되는 경제적 손실과 같은 냉정한 수치를 강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득실과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 이성과 감성 코드를 함께 동원하는 연설로 막판에 독립 반대표를 결집시켰다.
결국 영국 정체성의 위기 원인도 정치 리더십이었고 그 처방도 정치 리더십이었다. 소수의 큰 목소리를 통해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는 것이 민주주의란 사실을 이번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보여주었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앞섰던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이 앞으로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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