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일본의 역사 인식 퇴행을 정면으로 지적한 일은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과거사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한일, 중일 정상회담을 하자는 식의 제스처를 구사하는 상황에서 나온 보고서여서 더욱 그렇다. CRS의 ‘미일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일본이 제국주의 시절을 미화하려 한다’며‘관방장관은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지만, 담화의 재검증 자체가 과거 있었던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시켰다’고 명시했다.

      CRS의 보고서는 미국 의회의 정책이나 법안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공식 싱크탱크로서 민간 단체의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 행태는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결국은 미국의 이익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또, 지난 2007년 미 연방 하원에서 통과된‘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일본측은 최근‘요시다 증언’이 허구였다는 점을 들어 이를 흠집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일본을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다소 낯선 풍경이다. 세계 모든 일에 시시콜콜하게 간섭헤온 미국이지만 그동안 한국을 무시해온 일본의 오만함만은 수수방관 해오지 않았던가.
그 동안 일본은 여러 가지 꼼수를 둬왔지만 최근에 논란이 됐던 것은 주미 일본대사관이 버지니아주 의회의 동해병기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워싱턴의 대형 로펌과 거액의 용역계약을 체결해 조직적으로 로비활동을 벌여온 사실이었다. 주미 일본대사관 측이 로펌 측에 제공한 비용은 석달간 7만5천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공관이 연방정부가 아닌 자치단체의 입법을, 그것도 찬성로비도 아닌 반대로비를 하기 위해 대형 로펌을 동원했다는 것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비판받았다.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국력 3위, 경제력은 한때 미국에 이어 2위에 오른 적도 있는 강국이다. 이런 일본을 오바마 정부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국가라고 생각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뿐 아니라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미국까지도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 찬 낯뜨거운 일본의 행보를 더 이상 간과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확실하게 못박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로비단체들이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은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 위원회’(AIPAC 에이팩)라는 유대계 단체다. 회원 10만명에 상근 직원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단체의 모토는 미국-이스라엘 동맹 강화이지만 실제 목적은 이스라엘 국익을 보호하고 미국 내 유대계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직능단체들을 제치고 이 소수계 단체가 으뜸으로 꼽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매년 초 워싱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에이팩 연례총회에는 1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몰려든다. 올해의 연사로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이었다.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참석했다. 화려한 연사 명단과 참석 인원도 놀랍지만 더 관심을 끈 것은 프로그램이다. 사흘간 200개 이상의 세션이 진행된다. 주제도 종교에서부터 이란 핵 문제 등 다양하다. 이란 핵 문제의 경우 강경한 이란 제재 법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단계를 자세히 설명한 뒤, 각 회원들에게 지역구 의원들을 찾아가거나 편지를 통해 설득하도록 권유했다. 미국 전역의 회원들이 각 지역 단위로 움직여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에이팩이 추진하는 법안들은 초당적 지지를 받고, 만장일치 의결이 나오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물밑 작업이 작용한 결과다. 이런 조직적 움직임과 함께 중요한 것이 돈이다. 유대계는 미국의 금융을 장악했다고 할 정도로 자금력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이팩은 비영리단체여서 직접 선거자금 후원을 하면 위법이 되기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한다. 에이팩이 정치인들의 성적을 매겨 발표를 하면 회원들이 이 성적순에 따라 정치자금을 내는 식이다. 에이팩 총회에 연방의회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에는 재미동포가 200만명 넘게 살고 있지만, 미국 정치권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진 재미동포들의 정치적 힘이 강해지면 미국의 정책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정치적으로 직접 개입할 수 없다면, 한인사회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을 세워야 한다. 올해 초 버지니아 주 하원의회에서‘동해 병기’법안을 무려 81대 15의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의 연방의원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투표권을 가진 한인 시민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 등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주부터 한달 동안 포커스는 유권자 등록법 안내를 시작으로, 격전지가 될 3개 분야인 잔 히큰루퍼 주지사와 이에 맞서는 공화당의 밥 보프레, 마크 유달 상원의원과 코리 가드너, 마이크 코프만 하원의원과 앤드류 로마노프 등의 정책을 비교분석하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한다.

      앞으로 한인사회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동해병기, 독도영토분쟁, 위안부 등 일본과의 역사 바로잡기부터 시작해, 한국전 참전용사 공원건립, 한국어 운전면허시험 부활, 투자 및 취업비자 활성화, 한인사회 후원금 받기 등 주류사회와 손을 잡고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들 정치인들의 관심은 한인 커뮤니티가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유효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투표용지가 복잡해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더라도 우리의 권리를 꼭 행사해야한다. 한인들의 ‘머리수’가 우리 2세들이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잊지말고 행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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