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트니 메이너드는 갓 결혼한 29살의 행복한 신부였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검사 결과 뇌종양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수술을 했지만, 3개월 후 종양은 더 커졌고,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뇌종양은 가장 악성 종양인 다형성신경교아증(glioblastoma multiforme)이었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동안 그녀는 온갖 고통을 거친 후에 죽음을 맞게 되어 있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메이너드의 가족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오레곤주로 모두 이사했다. 메이너드가 존엄성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메이너드의 상태는 조금씩 더 심해졌다. 2차례 심한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으며,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메이너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의 생일인 10월30일에서 이틀이 지난 11월 1일을 생의 마지막 날로 선택했다.
메이너드는 조금씩 죽음을 준비했다. 친구와, 엄마와, 남편과 함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을 다녔다. 페루의 마추피추, 알래스카, 그랜드 캐년, 옐로스톤…. 헬리콥터도 타고, 암벽등반도 즐겼다. 그녀는 그렇게 하나둘씩 자신의 버켓 리스트를 이루어갔다.
메이너드는 마지막으로 남편의 생일을 챙겨준 후 11월 1일에 남편과 함께 사용하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처방된 치명적인 약을 먹게 된다. 그녀의 침대 옆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부모와 남편, 친구가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게 된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이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그녀는 고통없이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위해 오레곤주로 함께 이주한 메이너드의 엄마인 데비는 “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다가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딸이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목숨을 끊는 것을 허락해야 하는 이 엄마의 마음의 깊이를 감히 짐작하기가 어렵다.
현재 미국에서는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주가 오레곤주 뿐이었지만, 뉴 멕시코, 버몬트, 몬태나, 워싱턴이 이와 비슷한 법을 통과함으로써 오레곤 주에 합류했다. 또 콜로라도를 비롯해 뉴저지, 매사츄세츠, 코네티켓,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존엄성을 가지고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인 Compassion & Choices라는 단체가 이런 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고통을 끝내고 존엄성을 가지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안락사는 오랫동안 논란을 일으켜왔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는 생명경시 풍조를 생겨나게 하고, 이를 오용하거나 남용한 범죄들이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논란이 크기 때문에 아직까지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도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 손에 꼽히는 유럽 몇 개국 정도에 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 가운데 많은 수가 냉장고 문에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시키지 마시오)라고 적힌 종이를 붙여놓는다. 혹시라도 심장마비 등으로 쓰러져 구급요원들이 도착하게 되면 구급요원들은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살펴본다. DNR 종이가 붙어있으면 구급요원들은 죽어가는 노인에게 심폐소생술 등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DNR이 곧 노인의 유언이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금지된 대부분의 주에서 현재 제한적으로나마 사람의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편은 DNR 뿐이다.
불치병에 걸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환자들에게 삶은 더 이상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고된 고행의 연속이다. 이들에게 강제로 생명연장장치를 부착해 심장만 뛰게 한다고 해서 이들이 과연 제대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안락사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생과 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살과 안락사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며, 함부로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픈 환자를 돌보기 귀찮다고 원치 않는데 강제로 약을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한 후 안락사를 택했다고 말하는 비정한 가족들도 있을 것이고, 재산을 노리거나, 의사를 매수해 거짓 진단서를 이용해 안락사를 시키는 수법의 살인범죄로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죽을 수 있는 권리는 허용되어야 한다. 일본의 요코하마 법원이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기 위한 4가지 조건으로 환자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죽음의 시기가 임박해왔으며, 본인이 안락사를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을 경우를 꼽은 것이 좋은 예이다.
메이너드는 자신의 삶을 가장 고귀하게 끝내고 영원히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삶이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죽을 수 있는 권리도 존중되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메이너드가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지구를 떠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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