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강박증’ 버려라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이 유달리 숫자를 좋아한다고 꼬집는다. ‘창턱에 제라늄 화분, 지붕엔 비둘기가 사는 분홍빛 벽돌집’을 아이가 말하면 어른들은 그것이 어떤 집인지 상상조차 못 한다. 대신 ‘십만 프랑짜리 집’이라 고쳐 말하면 ‘참 좋은 집이겠구나’라고 반응한다.
제대로 된 성지식과 성교육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성기능이나 성생활에 대해서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숫자에 집착하는 이가 많다. 그런 엉뚱한 숫자 놀음에 휘말려 자책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남녀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내가 달력에 날짜까지 체크하니 원….”
중년 남성 A씨는 성관계를 가진 횟수를 꼬박꼬박 기록하는 아내에게 불만이 대단하다. 그의 아내는 동창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횟수가 적으니 사랑이 식었나 보다” “남편이 외도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 후‘40대는 일주일에 몇 번’이란 식의, 일부 무책임한 성 담론자들의 숫자 놀음까지 아내가 들이대는 통에 A씨는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신세가 됐다.
물론 몇 달에 한 번이나 일 년에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섹스리스’라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몇 번’이 부부 사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오늘은 오래 했으니 만족하지?”
결혼 3년차 여성 B씨는 늘 성행위 시간에만 집착하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무조건 오래한다고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 조루가 있는 남편은 시간을 늘리기 위해 별의별 이상한 시술을 다 받았다. 사실 돈만 낭비했을 뿐 효과는 실망스러웠는데도 B씨의 남편은 여전히 ‘오래 하면 최고가 될 것’이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B씨의 남편 같은 조루 남성들은 ‘삽입 후 30분~1시간’이란 주위의 허세에 쉽게 좌절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서 정상적인 남성이 삽입 후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10분이었다. 삽입해 밤을 지샜다는 얘기는 무협지에나 나올 소리다.
‘시간 콤플렉스’에 빠진 조루 환자들을 치료할 때 일부러 시간을‘오버’해서 연장시켜 주기도 한다. 사정이 안 될 정도로 시간을 대폭 늘려주고 과연 무조건 오래 하는 게 능사인지 보라고 하면 환자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삽입 후 15분 이상 성행위가 지속되면 남성도 여성도 지치고 힘들어한다.
이런 체험을 한 조루 환자들은 너무 긴 삽입행위 시간보다는 정상인의 평균치를 선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삽입 후 30분 이상씩 한다는 과장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고, 노력해도 사정하지 못하는 지루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 성문화를 보면 사람들은 유달리 횟수ㆍ시간ㆍ크기 등 숫자에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의학교과서에 나오기는커녕 학술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없거나 외국에서는 주된 치료법으로 잘 활용되지 않는 시술들이 ‘효과 만점에 부작용 제로’라는 과장 광고로 사람들을 쉽게 유혹한다.
자신의 성기능이 비정상적이어서 치료를 받을 계획이라면 그것이 의학 교과서에 주된 치료법으로 권고되고 있는지부터 반드시 확인하기 바란다.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정석대로 교정해야지 무턱대고 ‘오래, 자주, 세게, 크게’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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