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에서 짜증을 가장 많이 내게 되는 상대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부부간의 갈등, 형제나 자매간의 갈등, 자녀들이 부모(특히 엄마)에게 내는 짜증이 바로 이러한 경우인데,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일상적인 공격성’이라고 한다. 얼마 전 심리학 저널에서는 공격성의 유형으로 ‘직접적인 공격성’과 ‘비직접적인 공격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직접적인 공격성은 소리치기, 때리기 등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이나 말을 의미하며, 대체로 여성보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반면에 비직접적인 공격성은 ‘간접적인 공격성’과 ‘소극적인 공격성’으로 다시 나뉘어 지는데. 간접적인 공격성은 특정 물건이나 제3자를 통해 우회적인 상처를 주는 것으로 상대가 아끼는 물건을 파괴한다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방식을 말한다. 수동적인 공격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상대의 전화를 무시하거나 생일이나 기념일 등에 참석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런데, 비직접적인 공격성은 남녀 간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직접적인 공격성의 상대는 대체로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가족은 강력한 유대관계에 있어서 직접적인 공격을 해도 그 관계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부모 자녀 또는 형제 자매의 관계는 영원히 부모 자녀이고, 형제 자매일지라도 소리치거나 때리는 식의 공격을 통해 상처를 주는 것은 오랜 상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건강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러한 공격성이 가족 안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졌다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서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어렵다. 특히 어린 시절에 당한 상처를 적절하게 표현하거나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 상처로 인해 분노와 공격성이 자리잡을 수 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표현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녀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자녀들이 표현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예를 보면 ‘미워, 화가 나, 외로워, 속상해, 슬퍼!, 힘들어, 무서워, 싫어’ 등이다. 부정적 감정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미워하면 안되지. 그것은 나쁜 거야. 외롭다고? 외롭긴 뭐가 외로워.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못쓰지!’ 만약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면 감정에 윤리나 도덕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표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녀가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때 잘 들어주는게 필요하다. 자녀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면 감성지수(EQ)가 높은 사람으로 자라게 되어 자신의 감정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높은 감성지수를 가진 자녀는 대인관계를 잘 세우고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든든하고 귀한 인생의 밑천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게 쉽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시대가 너무나도 복잡해진 탓에 요즘은 더 어려운 거 같다. 예전의 부모들이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을 보여줬다면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자식 사랑에 있어서 아주 영리하다. 물론 자녀들 또한 예전보다 더 영악해졌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젊은 부모들의 경우 어지간한 것은 자녀들 머리 위에서 다 알고 컨트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부모들이 영리해도 자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자식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지는 쪽은 부모이다. 왜냐면 자식이 부모를, 또는 자식이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를 빤히 아는 영악한 자녀들이 부모를 이용하고 또 착취하는 것은 부모된 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집에서나 억울한 부모들이 “너도 이 다음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같은 자식 낳아서 꼭 요만큼만 당해 봐라”고 악을 쓰는 것이다. 물론 이 악담은 지금은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들에게 숱하게 들어 본 소리이고, 아마도 현대 과학이 제아무리 세상을 뒤바꿔 놓는다 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또 한가지를 든다면, 부모와 자녀 중에 부모가 더 성숙해야 하고 더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자녀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쪽은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 역할은 늘 어렵고 힘들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때로 화를 조절하지 못해 위의 경우처럼 악을 쓰기도 하고 훈계의 매를 넘어서 심하게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부모로 인해 자녀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경우 자녀들이 받았을 상처를 바로 어루만져 주는 것이며, 자녀가 그러한 자녀의 마음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한 상처가 이후에 분노와 공격성으로 잘못 터져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되어 뒤늦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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