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시민권자를 제외한 전세계 한인들은 지난 2012년부터 한국의 총선과 대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정권이 주어졌다고 해도 영사관이 없는 콜로라도에서 본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순회 투표나 우편 투표는 부정 투표 등의 우려가 있어 본국에서 꺼리고, 법적으로도 현재까지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지난번 선거때 투표소는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에만 설치되었다. 그리고 콜로라도 재외동포들은 참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생업을 포기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투표장에 가야했다. 투표를 하려면 투표일 이전에 반드시 직접 영사관까지 가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등록하기 위해 한 번, 투표하기 위해 한 번, 이렇게 두 번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야지만 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실지로 당시 콜로라도에서 샌프란시스코 영사관까지 가서 투표를 한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비행기 티켓 가격보다 국가가 자신에게 부여한 참정권의 무게가 더욱 귀중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 동감하면서 영주권자인 필자는 늘 한국의 정치 뉴스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지난주 내내 한국은 정동영 전 국회의원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정 전 의원은 문화방송 보도국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미국 유명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인재다. 필자가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당시 그는 필자의 롤 모델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년 전 덴버 한인사회도 방문한 탓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요즘 뭇매를 맞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월요일 야권 신당 ‘국민모임’ 간판을 달고 다음 달에 치를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인이 당을 바꾸고 선거에 출마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서는 건 원칙적으로 그의 자유다. 그러나 정치를 향한 그의 자유가 다소 과해보인다. 정 의원은 당을 제 발로 뛰쳐나온 게 네 번, 당을 깬 게 한 번, 당을 새로 만든 게 두 번이다. 그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 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당 의장 두 번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뒤엔 열린우리당을 뛰쳐나갔고, 이합집산 끝에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했다. 대선 패배 후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에 “뼈를 묻겠다”며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9년 보궐선거 때 고향인 전주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2012년 총선에서는 새정치연합 간판으로 서울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하자 올 1월 다시 탈당해 ‘국민모임’이라는 신당에 합류했다. 이쯤되니 반대 진영에서 그를 ‘정치 철새’ ‘떴다방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명색이 여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인물이라면 당이 잘못 갈 경우 정치생명을 걸고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이자 지지해준 유권자들에 대한 의무다. 정 전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새정치연합 안에서 광주 서을 보선 공천이 불투명해지자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권노갑 새정치연합 고문이 두 중진에게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만류한 것은 당장의 이익을 좇아 탈당과 복당을 반복해서는 곤란하다는 상식을 담고 있다고 본다. 문재인 당 대표의 포용력도 문제지만 금배지를 달기 위해 정당을 헌신짝처럼 바꾸는 일은 극복해야 할 후진적 행태다. 빛나던 예전의 스펙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이 지금 모든 여론에서 뭇매를 맞는 이유는 결코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 이력이면 자신의 행동을 국민이 어떻게 볼지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아닐 때를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인들은 도의적인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가차없이 버리는 인간을 우리는 더이상 올곧은 정치인이라 보지 않는다. 이제 자신의 테두리에 걸쳐있는 몇몇 지지자들로만 가지고 정치를 할 때는 지났다. 국민이 호응해주지 못하는 정치인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동네정치라고는 해도 이곳 콜로라도에서도 정치의 분위기는 돌아가고 있다. 이제 곧 한인회들은 새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시기와 맞물려 한인회간 통합의 분위기도 낯설지 않고, 노인회의 통합 또한 수면위로 부상 중이다. 때문에 차기 회장의 역할이 참으로 막중하다. 지금까지 콜로라도 인사들도 한국의 정치처럼, 단체장이 마음에 안들면 자기 주변의 몇몇들과 손을 잡아 약식의 쿠테타를 일으켜 회장을 밀어내거나, 혹은 아예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것을 여러번 시도했었다. 콜로라도가 성장을 했다고 해도 한인사회가 수적으로 증가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한인은 아직 3만명이 안넘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인회 선거를 앞두고 한인회와 노인회 분위기 파악을 위해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동분서주 하고 있는 인사들이 눈에 보인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주는 쪽에 좀더 머무를 수 있겠지만, 심지가 없다면 이또한 믿을 만한 회장감은 아니다. 동포들이 밀어주는 회장이 아니라면 더이상 한인회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동영 전 의원과 천정배 전 장관은 입을 맞춘 듯 ‘야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창당의 변명을 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철새 정치인들의 발언이긴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말 이래도 되느냐’고 되묻고 싶은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기 합리화적인 발언으로 지금 당장을 모면하고자 하는 사람보다는,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진정한 한인회장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어차피 한인사회 단체장들은 월급도 안나오는 명예 정치인이 아닌가. 한인사회에 대한 봉사의 의무가 첫번째다. 이제 한인사회도 간사한 말보다 묵묵한 실천이 앞서는 회장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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