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일정을 마쳤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다소 눈꼴시려운 성과를 거두고 돌아갔다. 지난 4월 29일, 아베 총리는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줄곧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2차대전 당시 행위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끝없는 조의”를 표한다며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 위안부에 대한 사죄는 없었다. 물론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미 하원의원 5명(민주당 4, 공화당 1)이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에 관한 사죄를 권고했지만 미 상하원 의원 535 명 중 5명의 영향력은 너무도 약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에번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담당보좌관이 “아베 총리의 방문은 우리의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이 중심임을 단언하는 것”이라고 선언한 점이다. 말만 앞세운 아베환영이 아니었다. 국빈만찬, 상하원 연설 등 아베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다.

    상 하원 합동연설은 미국이 제공하는 최고의 예우이다. 그동안 한국은 여러 차례 합동연설을 했지만 일본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패전국이란 원죄 때문이다. 미일 밀월을 구가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이던 2006년에 상하원 합동연설이 이뤄질 뻔했으나 미국 참전용사들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번 연설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초청에 따른 것으로, 일본 현직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 의회 합동연설이 성사됐다. 때문에 대외적으로도 의미가 각별하다. 종전70년에 성사된 만큼 그런 시대의 종언(終焉)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갈망해 온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다섯 나라다. 이들에게는 거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유엔은 지난 한 해 동안에만 8만3천 명의 평화유지군을 세계 15개 지역에 파견했다. 그에 따른 유지비만 75억4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 비용은 원칙적으로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지만 일본과 독일도 그동안 계속 함께 부담해 왔다. 비용 분담 비율은 미국이 28.38%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순이다. 미국과 일본이 전체 비용의 거의 40%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으로선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돕겠다는 이유는 유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너무 벅차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남용이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또, 미-일은 양국 간 군사협력의 수준과 범위를 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사상 최고 수준의 군사동맹을 구축했다. 쉽게 말해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간에 무력마찰이 일어나면 미국이 일본을 돕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명한 셈이다.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충돌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이 일본 편을 들지는 않겠지만 일본이 무슨 일을 저지를 경우 수수방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미-일 밀월시대가 막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은 왜 이렇게 가까워졌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일관되게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을 강조해 왔는데 여기에 일본이 적극 호응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대리인이 되겠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대응해 미국 주도의 경제권을 형성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일본이 적극 참여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대신 미국은 센카쿠 열도 등 중국과의 마찰이 일어나면 일본과 함께 대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태평양지역 재균형 전략은 오바마 대통령의 꿈이며 재임 업적 목표 중의 하나다. 일본이 오바마의 이같은 꿈을 이루어 주었으니 대우가 극진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한국은 미국의 말 잘 듣는 동맹이 아니라 미국대사를 칼로 찌르는 등 반미무드가 형성되어 골치 아픈 우방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욱이 한국과 함께 일본을 비난했던 중국마저 변하고 있다. 며칠 전 반둥회의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아베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일본에 호의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국익을 좇아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우리는 고아가 된 기분이다.

    지난주말 러시아 모스코바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맞춰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항의하면서도, 나치 범죄에 대한 책임과 사죄를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세계적인 역사학자 187명이“아베는 위안부 과거사 왜곡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집단 성명을 내기도 했다. 얼마전 콜로라도에서 성장한 한인2세 청년이 하바드대학교에서 아베 총리의 연설 중 돌직구 질문을 던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아베의 공식적인 답변은 위안부를 인신매매쪽으로 몰고 갔지만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전범의 책임과 반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관계를 감정에만 매달려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물론, 반드시 일본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  그러나‘사과’가 끝이 아니기 때문에 사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옆과 뒤도 함께 공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혹여 아베의 마음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멘트를 한다면, 우리는 더 당황스러울지 모를 일이다. 국제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재외동포들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만 터지면 모국을 후진 국가라고 탓하며, 정부가 더 많이 내놓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다그쳐 왔다. 앞으로 필자는 우리 콜로라도 교민들이 모국을 위해 함께 해야할 일에 대해 차근차근 언급하겠지만, 그 이전에 오늘은 케네디 대통령의 명언을 한번 떠올려 보길 바란다.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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