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세 사람은 부모, 스승, 벗이다. 이 세 사람 중 스승은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다. 훌륭한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인생길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을 켠 것이고, 좋은 제자를 갖는다는 것은 뜻과 꿈을 물려 줄 수 있는 상속자를 얻는 것이라 했다. 요즈음의 우리 교실에는 선생은 있으나 스승이 없고 학생은 있으나 제자가 없다고들 한다. 다시 말해 단순 지식만을 전달하는 선생이 아니라 인생길을 밝혀주는 스승이 없다는 얘기이다. 한국에서는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러나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면서, 스승과 선생을 사전적 의미로 따져보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기성세대의 잣대가 오히려 스승과 제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배우는 사람이 존경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또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고루 사랑한다면 스승과 선생의 단어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우리는 위대한 스승을 영화속에서 가끔 만나기도 한다. 얼마전 남편과 함께 봤던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에 나온 선생님이 생각난다. MIT 공대에서 바닥 청소일을 하던 윌 헌팅의 참 스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빈민 지역에 살면서 대학교라고는 청소할 때 외에는 가본 적도 없지만 윌 헌팅은 타고난 재능으로 교수들조차 풀지 못하고 끙끙대는 문제들을 한번에 풀어냈다. 로빈 윌리암스는 이런 윌의 재능을 보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후원하고,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자기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선생님, 그의 가르침은 참된 스승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을 연상케 하는 <블랙>의 사하이 선생도 그렇다. 주인공 미셀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8세 소녀이다. 그녀는 성장할수록 제멋대로 도드라졌고 부모도 그녀를 통제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이 때 사하이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다.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미셀에게 수저로 밥을 먹을 때까지 밥을 먹이지 않는 가혹함도 보이긴 하지만 결국 미셀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되고 대학까지 들어가게 된다. 아무것도 받아 들이려 하지 않던 미셀에게 눈과 귀가 되어준 사하이 선생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인 <위플래쉬>의 플렛처 교수는 폭군 선생이어서 보다가 화가나는 부분도 있긴하다. 하지만 이 영화속에서 플렛처 교수가 진짜 스승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학생의 재능을 미리 알아보고 지독한 교육방식을 통해 학생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영화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최근 한국 TV에서도 소개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주말 저녁,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경기 부천시 원미동의 한 족발집에서는 30대 중반 ‘아저씨’ 10여명이 일제히 한 사람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이춘원(53) 시흥 장곡고 교장의 눈가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세월이 흘러 사제(師弟)가 만나는 일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 교장에게 1998년 졸업생들은 조금 더 특별하다. 이 선생님은 20년전 부명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시절 학생들과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는 것이 아쉬워 제자들의 모습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고, “20년 뒤 TV에 광고를 낼 테니 꼭 다시 만나자”는 뜬금없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방송을 타고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 선생님은 20년전에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의 20년 후의 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선생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촬영하기 위해 나선 제작진이 “학생들이 선생님을 기억할까요?”라고 묻자 “기억할거예요, 제가 그 아이들을 많이 사랑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이 선생님의 말대로 제자들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가 운동장에서 축구 하면서 몰래 담배를 피운 거 아셨어요? 모래 때문에 연기가 안 보일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거든요.” “당연히 보였지 이놈아. 피우지 말란다고 안 피울 놈들이냐. 그냥 못 본 척 한 거지.”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는 한 학생은 “큰 실수를 해 경찰서에 간 적이 있는데 잔뜩 겁에 질려 전화한 곳은 부모님도, 담임 선생님도 아닌 이춘원 선생님이었다”며 “경찰서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내 머리를 쥐어박던 경찰에게 ‘내 새끼는 때려도 내가 때린다’고 소리 지르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생은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고 나면 꼭 운동장으로 데려가 등목을 시켜주던 스승이었다. 먼저 찾아주셔서 죄송할 뿐”이라고 회고했다. 곧 아빠가 되는 한 제자는 해산을 엿새 앞둔 만삭의 아내와 함께 이날 은사를 찾았다. 이 교장이 제자들 앞에 내민 편지 뭉치에서 익숙한 필체를 발견한 유모씨가 낡고 빛 바랜 편지 한 장을 들고 스승 앞에 섰다. “20년 뒤에 꼭 찾아 뵙고 그 땐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 족발집 사장이 된 유씨는 그 약속을 지켰다. 이런 사제간의 대화를 지켜보면서이 교장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가르쳤던 열정적인 선생님′으로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코끝이 찡해왔다. 설렘과 간절함을 담아 만들었던 당시 그 영상은 보고 또봐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도 위대하거나, 혹은 위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스승이 한명쯤은 있을 법하다. 필자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세면 셀수록, 스승의 날 선물 꾸러미가 크면 클수록 대접받는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태양이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쑥쑥 크는 해바라기처럼, 밝게 자라주기만 한다면 모범생이든 말썽꾸러기이든 모두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어주었던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지금이라도 각자 은사님께 감사하다는 따뜻한 한마디를 남겨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지금 우리 자녀들의 선생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보자. 마지막으로 필자는 기억속에서 가물거리던 스승의 얼굴들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해준 이춘원 선생님께 멀리서나마 존경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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