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카레나 이탈리아의 파스타, 일본의 스시, 중앙아시아의 케밥, 프랑스의 푸아그라, 스위스의 퐁듀, 태국의 똠얌, 베트남 쌀국수 같은 것이 결코 한국의 음식보다 낫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의 그것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런 음식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의 다양한 종류와 맛을 가진 한국 음식이 세계화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자기만의 비법’을 고집하기 때문일 수 있다. 모두 저마다 설렁탕, 김치, 갈비, 비빔밥, 국밥의 원조라고 외치면서, 그다지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꼭꼭 숨겨둔다. 이 비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가 기밀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음식의 세계화가 더딘 이유는 이러한 고집보다도 홍보의 역부족 탓이 더 크다. 한번은 미국 TV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보여주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등장한 장면 중 하나가 7,80년대 한국에서 벌어진 시위진압과정이었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경찰봉, 그 팔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대학생의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최류탄 때문에 화면은 뿌얬다. 한국전쟁 당시 몇 십만 명의 군인이 죽었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다는 흑백필름이 나레이션과 함께 텔레비전에 나오면 이것을 보는 미국인들은 ‘한국은 정말 못사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국 땅인 이곳에서, 그리고 지금 세대에서 한국의 60여년전 장면을 보는 것은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유도한다. 감회가 새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이 미개한 국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 없다. 한번은 덴버 포스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에게 미국 TV프로그램에서는 3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얘기를 들춰내어 한국이 지금도 마치 그런 나라임을 인식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명색이 기자인 그 친구 또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는 옛날 케케묵은 전쟁 세대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접근보다도 문화적 접근으로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한국을 심어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에 부합되는 방법 중 하나는 한국 음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 국가와 국민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음식만한 것이 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일명 ‘먹방’ 프로그램이 대세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에서 널리 쓰이는 신조어이다. 주인공들의 먹방을 갈무리해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드라마가 등장했으며 최근엔 대다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를 굳혔다. 실지로 필자 또한 ‘식샤를 합시다’ 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고, 맛집 소개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한국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라면서 리스트를 작성해 놓았다. 영국의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대한민국의 먹방이 인기가 있는 이유에 대해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한국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이건 그들만의 협소한 시각에서 비롯된 해석일 뿐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논평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눴지만 요즘 들어 가족과 함께 밥 먹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이런 현대인들이 방송 속에서 먹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가족과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듯한 대리 충족을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식욕을 다루었기 때문에 먹방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TV의 영향력은 크다. 일본 푸드 채널은 이미 미국내에서 꽤 인기를 얻고 있다. 정갈한 주방장 옷에, 신선한 생선과 아름다운 장식, 호화로운 촬영조명까지 곁들인 일식은 햄버거와 튀김류에 익숙해진 미국인들에게 음식에 대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패널들이 음식을 맛볼 때마다 터져나오는 음식에 대한 환호로 나도 모르게 일식에 빠져버리는 듯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맛있는 음식이 일식이라는 착각에 잠시나마 사로 잡힌다. 이것이 방송의 힘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 프라임 방송시간에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고정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미국에서는 우리가 쇠는 설날을 Chinese New Year(중국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이 때가 되면 대대적인 행사를 기획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음력설을 우리 설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설날이 되면 중국 커뮤니티로부터 매번 초대를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설날이 아니고 마치 남의 설날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이제 음력설은 전세계적으로 차이니스 설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추석을 공략하는 것이 어떨까. 일단 코리안 땡스기빙(Korean Thanksgiving Day) 혹은 한가위, 풀문 데이(Full Moon Day) 라는 명칭을 한개 정하자. 그리고 푸드 채널을 통해 명절음식 만들기를 방영한다면 지금 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한국 홍보용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평소 방송에서는 간단한 김밥과 떡볶이 만들기, 쉬워보이지만 탱탱한 면발 유지가 관건인 라면 끓이기 등을 선보이고, 명절이 되면 한국 전통 음식과 임금님 수라상까지 찬찬히 소개를 한다면 전세계 사람들의 눈은 분명 휘둥그레질 것이다. 한국 음식이 얼마나 건강식인지, 정성스러운지,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한국 음식은 풍요로운 한국의 문화를 짐작케 하는 또 다른 매체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유튜브와 인터넷이 발달했다 해도 TV의 공중파 채널을 통해 매일매일 한국음식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한국 음식 전문 채널을 공중파 채널로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동포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해외지원을 담당하는 한국의 여러 부서에서 현재 한국학교, 민주평통, 한인2세들을 위한 각종 행사에 지원을 해주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중요한 일이다. 이에 한가지 더, 한국 홍보를 위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방송에 코리안 푸드 고정채널을 추가하는 것은 국가적, 범동포적 차원에서 고려해 볼만한 일이다. 이번 주는 추석이다. 방송 채널이 없다해도, 추석 고유의 명절 음식인 송편이라도 이웃과 나누면서 한국도 알리고 우리의 명절도 알리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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