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열린 콜로라도주 노인회의 임시총회는 상당히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회의가 시작된지 불과 30여 분 만에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노인회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과격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총회에서는 회장의 연령과 전형위원회의 구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파행의 가장 큰 이유는 지난달 단독후보로 전형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한 조석산씨의 ‘나이’였다. 어리기 때문에 회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씨의 나이 문제는 지난 2013년에도 불거진 바 있다. 그 때도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조씨를 회장으로 추대해 놓고는 다음날 회칙에 명시되어 있는 연령 제한에 맞지 않는다는  이의가 제기되면서 일이 커졌다. 하지만 당시 사용하던 회칙에 정회원의 나이가 55세이고 55세 이상이면 회장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확인되면서, 그때부터 나이보다는 조씨의 회원 여부를 따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계속해서 “조씨는 회장이 될 수 없다”는 식의 딴지를 건 셈이다. 결국 비조석산파는 조씨를 노인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나기까지 했다.

     문재만 전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청하며 벌어진 노인회장 선출과정의 파문은 결국 이연길씨가 21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초 노인회의 잡음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연길 회장마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을 했고 이에 다시 윤석훈씨가 회장 대행 체제로 노인회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노인회 회장단을 둘러싼 잡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회장 대행 임기가 올해말로 끝나면서 현재 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 조씨가 다시 회장에 입후보했다. 그러자 정일화 전 덴버광역한인회장을 중심으로 한 일명 비조석산파는 조씨를 통과시킨 전형위원회의 구성자체가 무효이며 콜로라도주에 등록된 노인회 정관에 회장의 자격이 65세 이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또 한번 조씨의 회장 자격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에 조씨는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회칙에는 55세이상이면 누구나 노인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회장에 입후보할 수 있다며, 이번 총회에 참석해 연령을 따지고 있는 대부분이 노인회 회원이 아니며 회칙을 운운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반격 중이다.
지난 10여년동안 노인회는 한인사회의 최고의 어른 단체로서 열심히 일해왔다. 특히 문재만 회장 재임 당시는 모국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노인회의 숙원이었던 노인회 차량을 구입하는가 하면, 설날, 한가위, 삼일절, 광복절, 어버이날 행사, 컴퓨터교실, 건강검진 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추진하며 한인회가 하지 못했던 한인사회의 단합을 이끄는데 선두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 노인회는 회칙 몇 줄 때문에 지금껏 쌓아온 명성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인사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회칙이 항상 문제였다. 분쟁이 생기면 법정을 찾고, 서로 믿지 못하는 회칙에 따라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한 국가를 움직이는 법도 하물며 문제가 발생하면 필요시 특별법이라는 것을 제정한다. 그런데 이 친목단체 같은 이민사회의 봉사단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놓은 회칙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미국 법원에까지 들고 다니며 싸움할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 동안 회칙은 여러번 바뀌어서 어느 회칙이 맞는 것인지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법원은 모든 단체를 친목단체로 규정하고 돈이 결부된 일은 각자 나누어 가지거나,  알아서 싸우라는 결론을 내려왔다. 결국 편가르기 즐겨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미꾸라지들 때문에 한인사회의 위상이 떨어지고, 공동재산은 허무하게 사라졌고, 영원한 원수들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한인사회 최고의 연장자들이 모인 노인회에서 귀감을 보이기는 커녕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콜로라도에서 한인회, 노인회의 분쟁 역사는 길다. 물론 단체를 운영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회칙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인회가 회칙을 따져가며 조씨의 나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어보인다. 사실 조씨는 10년 훨씬 전부터 노인회와 한인회 분쟁에 앞장서온 사람이다. 그 당시 그는 노인회원이 안 되는 연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회를 위해 일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노인회에 시간을 투자한 사람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회원의 자격이 되어, 회장후보로 나섰다. 57세가 노인회장으로서는 어린 나이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강압적인 방법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조씨 본인의 몫이다.

     이번 노인회 총회에서는 ‘노인’이 빠졌다. 정말 회원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도 없는 10여 명의 말싸움에 불과했다. 이들 몇 명을 위한 정관이라면 더욱 필요없다. 지금까지의‘모 아니면 도’ 해법은 무책임하다. 조씨측은 다시 전형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에 찬성한다든지, 반대편은 조씨의 나이를 인정한다든지 구체적으로 한발자국씩 양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제 3의 인물을 찾아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 2년동안 노인회의 회장단, 집행부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제라도 회장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도와주고, 다독여주면서 나아가면 될 일이다. 여태까지 노인회를 외면해왔던 사람들이 이제서야 나서서 나이 때문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모양새도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진정으로 노인회를 위하겠다는 57세가 한인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고 정의에 눈감는 65세보다 나을 수도 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