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기있었던 개그 프로그램 중에 ‘애정남’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몇해전 에 비슷한 주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 애정남은‘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준말인데, 요즘 콜로라도에도 애정남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애정남은 일상에서 쉬쉬하거나 혹은 판단을 내리기 애매했던 부분을 입밖으로 끄집어 내어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단순히 웃고 넘기는 개그 코너가 아니라, 사회에 꼭 필요한 불문법을 정해준다는 데 있어 신선했다. 예를 들면 애정남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끊겼을 때는 처음에 전화 걸었던 사람이 다시 한다고 명료하게 정해준다. 어머니 선물은 앞으로 무조건 상품권으로 준비하고, 연인간의 스킨쉽 허용기준도 정해주었다. 신작영화 3편 이상을 함께 봐야 연인이고, 맛집도 지방 1곳을 포함해 3곳 이상을 가야하며, 누적 통화 시간 100시간 이상이 되면 여성은 남성에게 스킨쉽을 허용해야 된다는 식이다.

       며칠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 남성의 격앙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자신이 한 건축회사에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그 건축회사 광고를 계속 내면 포커스 신문사를 고발하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자는 그가 말하는 내용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조건 자신이 피해를 본 건축업자의 광고를 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계속 낸다면 신문사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전화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메일로도 아예‘광고 취소’라는 제목하에 그 건축회사의 파산 번호까지 적어보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파산 신청을 한 사람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광고를 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파산 후에도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더 열심히 일을 찾아야 한다. 만약 본인이 건축업자에게 피해를 입었다면 정정당당히 나서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그 업체에 대한 정당한 사회공론을 모으면 되는 일이지, 신문사에 전화해서 광고를 빼지 않으면 신문사를 고소하겠다는 말은 밑도 끝도 없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일을 맡긴 본인이 잔금을 치르지 않아 떳떳하지 못한 상황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콜로라도에서 건축관련업체와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백퍼센트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태반이 건축업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간주될 수 있지만, 여기서 정하자. 갈등은 반드시 건축업자에게만 있다는 생각은 버려라. 일을 맡긴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건축관련 시비는 양쪽의 말을 꼭 들어보기로 하는 것으로 말이다.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참 작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면 3개월 이내에 모두 소문이 퍼지게 되어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두사람만 건너면 신분털기도 가능한 곳이다. 이렇게 작고 친밀한 이민사회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단어는 ‘체류신분’이다. 미국 정부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진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을 살펴보면 불체자를 사면시키고, 별도의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며, 이들에게 세금을 내도록 유도하면서 불체자들도 함께 잘 살아 보자는 의도의 정책이 꾸준히 상정되어 왔다. 하물며 이민국 소속 경찰 외에는 일반 경찰도 개인적 체류 신분을 물어보지 않는 지금 시점에서 ‘너 영주권 없지’하며 공갈 아닌 공갈을 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언론을 한다는 작자들이 자신들의 신문에 광고를 안 한다는 이유로 툭하면 “영주권 없는 거 안다”면서 신분증과 라이센스까지 요구하면서 업체들에게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있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촌구석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을 신문한답시고 으시대며 동네 물을 흐리고 있다. 일단 애정남으로 이렇게 정해보자. 먼 타국에서 성실히 일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영주권을 못 받은 동포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려 않지 않고,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인간들은 인간 쓰레기라고 치부해버리고 상종을 하지 말아라. 사실 ‘신문의 이론’이라는 가장 원론적인 교과서에 나와있듯이 기사에도 엄연히 가이드 라인이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로라도에는 신문의 기사 내용을 제멋대로 결정짓는 이들이 있다. 오늘 필자는 애정남이 되어 몇가지를 정해보고자 한다. 첫째, 신문사에서 모든 제보를 기사화 할 수는 없다. 둘째, 뒷받침할 근거 자료 없이 일방적인 비방 기사가 나오면 그 신문은 아예 버려라. 읽는 사람의 기분만 상할 뿐이다. 셋째, 콜로라도 뉴스는 기자가 적은 기사만 인정해라. 기사 실명제는 책임지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곳 콜로라도는 자영업을 하는 한인의 비율이 타주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래서 갑과 을의 관계가 상당히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공짜반찬이라고 해도 너무 심한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반찬 리필은 한번까지 가능하다. 단, 웨이츄레스가 자발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받아도 된다.

       마트에서는 어떨까. 물건을 바꾸거나 환불을 할 때의 규칙을 정해보도록 하자. 인상 팍팍 쓰고, 목소리 높혀야 잘 바꿔 줄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 이제부터는 물건을 바꾸러 갈 때 웃는 얼굴과 존댓말은 무조건 사용하도록 한다. 그래야만 서로 기분좋게 마무리할 수 있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도 그렇다. 리얼터를 이용해먹을 만큼 이용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리얼터를 찾아 떠난다. 자, 여기서 애매한 것을 정해보자.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 동안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리얼터에서 왜 다른 리얼터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도록 한다. 아무리 미국에 산다고 해서, 자기 편한 것은 한국식으로, 자기 불편한 것은 미국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제시되어야 할 기준들이 참 많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티만 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 애매모호한 상황의 정리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남의 흉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피고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몇 명 때문에 한인사회의 분란은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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