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집을 샀는데 2월 말경에 이사 갈 예정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사도 도와주고 손녀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 때 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노강국 목사님의 전화였습니다. 노목사님은 뉴멕시코 주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목회하시는 분이십니다. 딸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시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신 분이십니다. 교회 이름은 ‘산타페 한인장로교회’입니다. 노목사님은 2월 8일(월)부터 26일(금)까지 한국에 다녀오실 예정인데, 2월 14일과 21일 주일예배 설교를 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속담처럼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2월 19일(금) 아침에 노 사모님의 전화를 아내가 받았습니다.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목사님이 새벽 3시 경 집근처 주유소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26일에 오신다는 분이 왜 일주일이나 일찍 오셨으며, 몸이 편찮으시면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시지 왜 미국으로 오셨는가? 유가족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길은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준비하느라 지체하는 것보다 빨리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바로 옷을 입고 노 사모님 댁으로 갔습니다. 노 사모님과 우리 부부 3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에게 노 목사님이 소천 하셨음을 알렸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오후 6시 예배에 참석해 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모교회(White Rock Presbyterian Church)의 미국목사(Rev. John Guthrie)님과 천국환송(장례)예배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사무실로 갔습니다. John 목사님은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한국 분들일 것이므로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노 사모님도 제가 집례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셨습니다. 졸지에 천국환송예배를 준비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6시에 교인 20여명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토요일 오후 4시에 노 사모님과 큰 아들 우리 부부 4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기쁘게 왔는데 친구의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게 되다니....... 주일 오후 6시 30분에 노 사모님, 두 아들, 누님, 집사님 한 분 그리고 우리 부부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 목사님의 2째 아들은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비자 문제로 한국에 나왔을 때 아버지를 만났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에서 왔습니다.  천국입성예배는 2월 22일(월) 9시 30분에 Funeral Home에서 드리기로 했습니다. 강수정(강기석 목사님)사모님은 주일 예배 후 꽃을 준비하시고 혼자서 덴버에서 이곳까지 365마일을 운전해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딸의 집에서 주무시고 꽃을 만들어 월요일 아침에 Funeral Home으로 같습니다. 노 목사님의 형님, 조카들도 왔습니다. 노 목사님의 얼굴을 보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 노 목사님의 시신은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천국환송예배는 2월 22일(월) 저녁 6시에 교회에서 드리기로 정했습니다. 급히 연락을 했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교회 앞에 노 목사님의 사진과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친구가 한 줌의 유골이 되다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소망이 있기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가 4월 10일까지 임시 설교목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노목사님이 55년생이시니까 올해(2016년) 61세이십니다. 조금만 더 사셨으면 은퇴하시는데....... 어느 선배 목사님이 ‘은퇴는 아무나 하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는 아니 나이만 먹으면 은퇴할 수 있지 은퇴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은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퇴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몸을 생각하지 않고 목회를 하시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될 때쯤에는 병을 얻어 일찍 돌아가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퇴 후의 사역이 있어야 은퇴할 수 있습니다. 은퇴 후의 사역은 교회로부터 지원받기가 어려우므로 자비로 해야 할 경우가 많으므로 이 또한 어려운 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은퇴 후 2년 정도는 설교나 세미나 강사로 불러주지만 점점 잊혀 진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직장을 따라 떠나가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이 땅을 떠나면 외로움이 밀려든다고 합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은퇴하신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은퇴 후의 생활비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녀들이 용돈을 두둑하게 드린다면 다행이지만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에콰도르 지도가 솟아오르는 환상을 보고 기도한 후에 선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덴버지역 교역자회에서 저를 에콰도르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2015년 6월 25일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제1호 파송 선교사가 되었다는 것이 책임감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 뿌듯하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은퇴(Retire: 타이어를 갈아 끼우다!)한 셈이 되었습니다. 은퇴는 아무나 하나!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