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크래프트’로 유명한 게임회사 블리자드 회장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했던 말이 있다. 그는 한국인은 학교에서 게임을 제일 잘하면 유명 인사가 될 정도로 경쟁심이 강한 덕분에 자신의 회사 게임이 인기를 끈 것 같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놀이인 게임을 여유를 가지고 재미삼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위에 오르고 인정을 받기 위해 몰두한다는 뜻이다. 며칠 날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다가 사망자가 나오는 희한한 나라가 아닌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저서 ‘우리는 왜?’에서 대한민국은 인구 과밀화가 심한 탓에 남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하고 외부 평가와 타인의 인정을 중요시하면서 여기서 비롯된 경쟁심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얼마전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한국처럼 놀 때마저 경쟁과 등수를 따지는 국가도 드물다는 확신이 더욱 견고해졌다. 이 멍때리기 대회는 무아지경의 도력을 겨루는 대회다. 야외에 모여 앉아 3시간 동안 무표정과 안정적 심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3시간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머리 속을 완전히 비워야 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버터야 한다. 2014년에 처음 열렸고 이번이 벌써 4회째라고 하는데, 외신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활동적인 야외 여가 활동을 즐기는 뉴질랜드에서는 한국의 ‘멍 때리기’가 이색 스포츠라고 소개했다. 대회의 취지는 ‘뇌 휴식’이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참가자들의 뇌는 더욱 긴장해 보였고 우승을 향한 마음가짐은 사뭇 비장해보였다. 대회 당일은 한낮 최고기온 33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웃거나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등의 행위는 자동 실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70명의 대회 참가 인원 모집에 2000명이 몰린 올해 대회 심사위원들은 15분마다 참가자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해 가장 안정적인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멍 때린 사람에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의 트로피를 시상했다. 전혀 동요없는 심박수를 유지해 우승을 차지한 가수 크러쉬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멍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회 열흘 전부터 틈틈이 연습한 효과를 봤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대회 덕분에 크러쉬는 다른 참가자들을 능가하는 ‘멍력’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한강시민공원 대회 직후 경기도 수원에서도 ‘국제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이걸로 대결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재미있어 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칼을 갈고 나왔다. 대회 규칙을 숙지한 뒤 며칠씩 연습을 했고, 미세 먼지와 허리 통증을 눌러 참으며 버티고 버텼다.

         이 대회는 인천 토박이 웁쓰양이라는 예술가에 의해 기획되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생산적인 결과물이 없어야 한다. 그는 극도의 불안과 허탈감에 시달렸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휴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리고 싶은 취지에서 이 대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멍때리기’는 바쁜 와중에 잠깐 넋을 놓는 정신적 이완의 순간이다. 미국과 중국에도 같은 뜻을 지닌 스페이스 아웃(space-out), 파다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열어 1·2·3등을 뽑을 생각은 한국만 했다. 아무것도 안하면 상을 주는 대회라니 솔직히 우스꽝스러운 대회가 아닐 수 없다. 흔히 생산성이 없다고 여기는 ‘멍때리기’와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생각하기’는 사실 표정이 멍한지, 심각한지로 구분된다. 사색과 멍때리는 행위는 한 끗 차이인데 이 대회에서는 이 차이로 가치가 전복된다. 물론 대회 취지야 재미있고 특이해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자신만이 찾아야 하는 여유의 시간을 등수로 매기는 것은 외국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1회 멍때리기 대회의 우승자가 9세 소녀였을 때, 얼마나 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면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불쌍히 여기는 대중들도 많았다. 실제로 그 소녀의 엄마는 아이가 수업시간에 자주 멍때려 혼내다가 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소녀 또한 “멍 때리는 것은 아무 생각 안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열심히 멍때리겠다”는 소감을 밝히는 기염을 토했다.

        멍때리기의 우승자들의 소감을 듣고 있자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저런 생활에 익숙해졌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스친다. 더구나 이를 순위 매길 생각을 했다는 것은 더욱 씁쓸하다. ‘멍때리기 대회’는 조만간 또 열릴 것이다. 어느 주말, 땡볕 아래서 멍때리는 척하며 과로할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승은 가장 오랫동안 초점없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물론 대회 취지는 뇌의 휴식이라는 명분으로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것은 쉬는 시간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에 집착하는 한국의 또다른 단면이다. 지난달 한 시장조사 전문기업이 한국의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61%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우리도 이곳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재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똑같다. 이민와서 10년만에 한국을 나갔을 때였다. 한국에서 살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각박함과 경쟁을 보고 놀랐다. 골목마다 빼곡하게 주차해놓은 자동차와 자신의 가게를 선전하기 위해 대문짝만한 걸어놓은 간판들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침을 뱉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난폭 운전자들의 천국이었다. 여유없는 삶 속에서 태어난 것이 멍때리기 대회지만, 대회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뇌의 휴식을 찾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도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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