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신 직후까지는 천국건설과 인류의 구원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천직임을 깨달으셨으나(소명인식), 이 천직을 수행해 나갈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을 모색하기 원하셨던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빈들에 나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누구나 위대한 일을 시작할 때는 시작하기 전에 기도해야합니다. 모세나 엘리야도 40일 금식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때때로 아버지 하나님께 여쭈기도 하시고, 때로는 자신에게 묻기도 하시고, 바위와 씨름하며, 손톱에 피가 나도록 풀포기를 뽑기도 하시고, 때로는 땅을 치고, 선인장에 찔리기도 하시며, 기도하시다, 우시다, 소리지르시다가 했을 것입니다.

첫째,경제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그 음성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것이었습니다. 악마는 이미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천성(天聲)을 들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로 떡을 만들어 제 자신을 먼저 배부르게 하라 그러한 권능이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지 않느냐? 어서 해! 그 방법이야말로 너를 기적의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요, 네가 천하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만복의 기쁨을 주는 구원의 길이다.”라고 유혹해 왔습니다. 악마는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악마는 예수께서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일 필요를 느끼고 있음을 간파했고 또 그가 지금 하늘나라 건설을 가장 근본적이고 긴급한 임무로 여기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하늘 나라란 무엇이냐! 배부른 곳이 아니냐! 기아로부터의 해방없는 모든 사상적, 정신적 운동은 허울 좋은 ‘상부구조’가 아니냐. 자유가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배고파 보지 못한 자의 사치스런 소리는 걷어치워!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평화(平和)란 무엇이냐! 떡을 사람에 따라 고르게 나누어 주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냐!  팍스 에코노미카(Pax Econ-omica)!” 현명하신 예수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악마의 속삭임인 것을 아셨습니다. “기적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이러한 수단으로 건설될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먹는 곳이 아니요, 하늘나라는 ‘사랑’이요, ‘믿음’이다.” 이점이 공산주의 천국과 예수의 천국의 차이입니다. 그는 곧 신명기 8:3을 이용하여 사단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떡으로 ‘만’(monos)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떡으로만 산다는 것이 물질주의, 공산주의인 반면에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정신주의입니다. 기독교는 물질을 경시하는 정신주의도 아니요, 물질만 중시하는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육신의 삶을 무시한 영(Spirit)만의 삶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영과 육을 엄격한 이분법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육과 영이 온전히 하나되어 영으로(결단, 의지)도, 육으로(실천, 삶)도 함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지향합니다. 아모스는 세상에 양식이 없어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근이라고 했습니다.(암8:11).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주의 말씀은 영원할 것입니다(마24:35).

둘째,정치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라

          악마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계 여러 나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주고(이 말은 정치권력의 매력을 보여주고라는 뜻) “당신이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악마는 정치적 왕국의 건설을 권유한 것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났다가 천하를 한번 호령한다면 지금 죽어도 억울할 게 없다. 담배보다 더 끊기 어러운 것이, 아편보다 더 끊기 어려운 것이 정치 맛이란 말도 있지. 성경에도 보라고, 세상 정권이나 권력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잖아!(롬13:1-7). 그러니 그것을 사용하여 백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고 그가 오면 당연히 조국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탄은 알고 있었기에 “백성 좋고, 너 좋을 일을 왜 하지 않겠니? 다윗도 그것을 사용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여호수아도 그것으로 개혁의 역사를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큰 일을 하려면 정치에 관여하여 백성을 휘어잡는 것이 제일이지. 백성이란 풀과 같은 것,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쓰러지고, 남풍이 불면 북쪽으로 구부리는 것이 아니냐? 정치는 마술의 황금 여의봉, 기적의 매스게임! 조각가는 죽은 돌을 쪼아 예술품을 만들지만, 정치가는 산 인간을 주물러 다루는 최고의 예술가요, 기술 중 기술이 아닌가!” “그러나 그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서 내게(악마에게) 한 번만 절하면 된다. 영원히 내 종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만 비 합법적이고 최면적인 방법을 도입하면 되는 거야. 네가 권력을 잡으면 백성을 억누르지 말고 선정을 베풀면 갚는 것이지.”  사람은 누구나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딱 한 번만’, ‘잠시만’ 비리와 타협하라는 유혹 말입니다. “내가 돈 벌면 누구처럼 아방궁을 짓겠다는 것도 아니다. 직원들의 후생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자선을 베풀고, 교회에 듬뿍 헌금하고… 단지 약간의 불법을 묵인하면 된다”. “내가 당선되면 힘껏 선거구의 사람들을 섬길 것이다. 단 한 번의 불법인데 뭘 그리 양심을 괴롭히느나.” 그러나 예수는 감언이설에 마성이 숨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천국 건설은 그 목적도 신성해야 하지만 수단도, 방법도 정당해야 합니다. “주 너희 하나님만 예배하고 그 분만 섬기라고 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맺는 말

        예수께서 유혹받으신 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단이 예수를 떠난 것은 잠시 동안(눅4:13)이지 영구히 떠난 것이 아니라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 후로도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십자가 밑의 군중의 입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사단은 예수를 유혹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에게까지 악마가 일생 따라다녔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신자들에게야 오죽하겠습니까. 명심하십시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때는 없다는 것을,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연령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하여 한가지 용기를 가지는 것은 예수께서 시험 받으셨다고 했지, 시험에 지셨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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