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한 남녀가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군에 입대한 남자가 이라크 전쟁터로 파견되었고, 치열한 전투 중에 그만 양 다리를 잃었습니다.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짐만 될 뿐이야.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그녀가 건강한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겠지’ 그래서 그녀와 연락을 끊고 남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먼 그녀의 소식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에게 몇 년 후 그녀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칼로 도려내는 듯 가슴이 아팠지만 ‘사랑하는 그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서 눈물로 견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너무너무 그리운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멀리서라도 한번 보고 싶은 열망에 남자는 그녀를 찾아갑니다. 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그녀의 집을 살피던 이 남자의 눈에 그 집의 정원이 들어왔습니다. 그곳에는 그렇게 사랑하는 그녀가 휠체어를 밀면서 그 휠체어위에 앉아있는 남자와 다정하게 키스하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두 다리를 잃고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해 똑같이 전쟁터에서 두 다리를 잘린 다른 남자의 발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이 현실을 깨달은 남자는 이렇게 흐느꼈다고 합니다. ‘흑흑흑...바보같으니...바보같으니...!’ 자신을 바보라고 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런 남자와 결혼한 그녀를 바보라고 하는 걸까요? 이 바보같은 사랑이 그리운 연말 입니다.

        지금부터 2000여년 전, 저 유대땅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라는 시골에 요셉이라는 청년과 마리아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양가 어른들의 결정대로 둘은 어릴 때부터 결혼하기로 정혼하고는 깨끗하게 서로를 지키고 있던 어느 날, 덜컥 들려오는 말이 동침도 안한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그 당시 유대인 법으로 하면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그에게 잉태 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만 믿고 바보같이 가만히 그 마리아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동침하지 않다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예수(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 합니다. 어느 날 동정녀 마리아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마리아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깜짝놀란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지만, 곧 이어 천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하는 말씀 앞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하고 바보처럼 그 임신을 얼른 끌어안습니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법보다도, 자신의 처지보다도, 자신의 생각보다도, 마리아는 하나님 말씀이기에 그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시킵니다. 바로 그 후 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

         이 바보 요셉과 바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셨습니다. 그 가정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위대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 영원히 칭송받는 찬란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처지를 전혀 따지지 않는 바보들의 행진을 좋아합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사랑도 바보같기 때문이죠. 이 세상 죄인들을 위해 자기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바보같고, 그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도 바보같은 사랑입니다. 바보는 바보끼리 통하는 법! 믿음은 코드가 맞아야 합니다. 정신의학 논문에 의하면 현대인의 50%가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LA의 <비버리힐스>는 이 미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스타 부자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세계에서 최고의 정신과 의사들이 몰리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최고의 스타로, 최고의 부자로 사는 그들이 한결같이 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더 차지하고 더 움켜쥐고 더 똑똑하고 <비버리힐스>에 최고의 가정을 꾸미는데도 다 무너집니다. 이런 세상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가정을 누가 구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오늘 우리에게 최고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구세주 탄생했으니 다 찬양하여라! 온 세상 죄를 사하려 주 예수 오셨네, 죄와 슬픔 몰아내고 다 구원하시네 다 구원하시네, 다 구원 구원하시네”(찬115)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타락한 인간의 자리로, 죄인의 언어로 오셨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해, 나같이 약한 사람을 위해, 나같이 병든 사람을 위해, 나같이 우울한 사람을 위해, 나같이 불행한 사람을 위해,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모든 죄와 슬픔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신앙이란 어떤 가능성 위에 서는게 아니라 실제적 사실 위에 서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오신 날입니다. 그 바보같은 사랑! 우리도 그 사랑 바보처럼 받고 바보처럼 줍시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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