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섹스를 생식행위라고 표현하는 데는, 그것을 통해 후손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구성원 수를 임의로 조절하는, 속칭 ‘가족계획 시대’에 섹스는 종족 번식보다 쾌락 추구의 뜻이 더 진하게 묻어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성행위는 낮 동안의 힘든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하늘이 내린 ‘정제된 쾌락’이라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그 사실을 확인해 보려고 클리닉에 다니는 남녀 20명에게 섹스를 하는 목적을 물었더니, 자녀 출산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여성 한 명뿐이었고, 그 외는 모두 레크리에이션으로서의 역할이라는 공통된 해답을 주었다. 사실 러브호텔을 들락거리며 환락을 즐기는 중년 남녀를 상대로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수태를 목적으로 혼외정사를 시도하는 이가 한 명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레크리에이션으로서의 섹스에 찬동하는가 하면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강력한 목소리로 ‘노’라고 항거하는 집단이 있는데, 그 대표세력이 곧 종교단체다. 즉 가톨릭교회에서는 아직도 성을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는 재래식 견해를 고집하고 있고, 그런 보수성 강한 시각으로 인해 임신중절 불허방침이 아직까지 철회되지 않는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생물학 책을 펼쳐보면 지구상에 암수의 복잡한 주고받음 없이도 훌륭하게 종족보존의 사명을 완수하는 생물이 많다.

박테리아처럼 개체가 둘로 쪼개지는 분열의 방법으로 초고속 증식하는 생명체가 바로 그들인데 대장균, 콜레라균, 적리균 등이 그 대표적이다. 이보다 복잡한 신체구조를 가진 히드라, 플라나리아, 효모 등도 같은 무성생식(無性生殖)의 방법으로 종족을 번식시켜 나간다. 즉 암수의 생식행위 없이 얼마든지 그 후손을 증식시킬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런 사실에서 보면 암수의 교미는 종족보존을 위해 생긴 행동이라고만 해석하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생물의 발달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암수가 생긴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생물은 외계로부터 에너지를 취입(取入)해 자신의 내부에서 대사(代謝)라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체중을 증가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아주 미세했던 개체가 커져서 일정한 수준, 즉 성인에 이르면 2분법에 의해 둘로 분열하는, 소위 무성생식이 시작된다. 이런 방법은 개체의 유전자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후손에게 전수됨으로써 생명체로서 진화의 소지가 없다는 결점이 지적되기는 해도 수적 증식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즉 유전자 변화가 없는 상태의 연속만 존재함으로써 외부적 환경의 변화나 내부적 병적 상태에 따른 지구력이나 면역성 강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 생명체들 사이에서 무엇인가의 원인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남으로써 암놈과 수놈이 생겼고,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절반만 포장한 패키지를 제작해 해수 속으로 방출했는데, 이 패키지가 서로 만나서 퓨전(fusion)되면 곧 새로운 특성(부친과 모친의 각기 다른 유전자가 조합해 만든 그 개체만의 성격)이 형성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주어진 환경에서의 생활능력이 일층 강화된 강인한 종(種)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곧 진화(進化)라는 것이다. 무성생식이 부친의 100% 카피(copy) 제품이라면, 후자의 방법으로 생식된 것은 50% 카피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지구상의 생물을 끊임없이 변화,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상기한 유전자 패키지가 각기 정자와 난자의 초기 형태라고 본다면 이것이 암수교배의 최초 형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최초로 암-수가 생기고 거기에서 섹스가 파생된 것은, 거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 곧 유전자 교환에 그 목적이 있었으며, 그것은 섹스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라는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