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덤앤 더머
         매릴 랜드를 출발하여 이곳 콜로라도 덴버까지 2000마일을 달려오다보니 비행기로만 내려보았던 땅과 마을엔 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큰 것 안에 묻혀져서 느낄수 없었던 아주 작은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숲만 바라보다가 나무를 못보거나 나무만 바라보다 숲을 바라보지 못했던 저의 연약함과 무지함이 깨우쳐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덴버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까 동부시간에 비해 무려 두시간의 시간차가 있어서 시계를 뒤로 돌려 바꾸고 나니 두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웬지 시간을 덤으로 얻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덤으로 얻은 느낌-마치 이 기분은 히스기야왕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낮을 벽으로 하고 간절하게 기도했을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을 연장시켜 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을 더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 벌은 이 두시간은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시간처럼 제게 주신 은혜의 시간을 연장시켜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덤으로 사는 인생을 고백하며 살고 있긴 하지만 잊고 사는 무지한 사람이기에 주님은 다시 한번 덤으로 주신 생명과 사역의 자리,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사명의 분량을 깨우치기 위해 이런 시간을 덤으로 주셨다는 생각을 일으키신 것 같습니다. 덤으로 주신 시간과 생명과 공간을 지난 시간 저질렀던 탐욕과 야망으로 또 다시 더럽힐 것인지 아니면 겸손하게 성결함과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으로 이 지성소를 채울 것인지는 지금 걸으려는 이곳에서의 걸음으로 결정되어 질 것입니다. 평생을 그리고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긴 불가능합니다. 앞으로도 또 실패나 실수는 할수 있습니다. 다만 제게 덤으로 주신 이 은총의 시간과 만남을 잊지는 말아야 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누린 은혜만으로도 갚을 길 없는 빚진자의 심정이지만 거기에 덤으로 주신 이 귀한 시간의 선물안에 이제는 성령님을 담아 내고 싶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눈이 머무는 곳에 저의 눈길도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부르심을 위해 기꺼이 달려가도록 걷는 발을 내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중에 덤앤 더머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조금 멍청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인데 그 멍청함과 바보스러움이 주는 웃음과 함께 감동도 있는 영화입니다. 덤으로 번 시간과 덤으로 얻은 은혜를 누리는 저를 덤앤 더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 멍청함과 바보스러움이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그 이름으로 이 은혜의 여백을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는 걸음을 이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2. 사랑하면 이름도 바꾼다
덴버에 정착하면서 이곳에 계신 선배목사님이 덴버의 아름다운 명소로 레드락스라는 곳으로 저희 부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붉은 암벽으로 둘러싼 자연이 만든 천혜의 장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회가 열린다는 콘서트장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직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앞에 서 있기만해도 공연장에서 울려날 소리들이 붉은 암벽들을 타고 하늘로 올라 다시 사람들의 가슴에 뿌려질 소리들을 상상해 보니 정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레드락스를 걸어 올라가다보니까 거기 중간에 한 동상이 하나 서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존 덴버 (John Denver)라는 유명한 가수의 동상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고향을 그리는〈Take Me Home, Country Roads〉나<Annie's Song>,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불렀던〈Perhaps Love〉는 저도 너무 좋아하는 노래들이었죠. 그런데 함께 간 목사님이 설명해 주시기를 존 덴버가 이곳 덴버를 너무 사랑하고 좋아해서 그의 성을 덴버로 바꾼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정말 존덴버의 본명은 헨리 존 도이첸도르프 주니어(Henry John Deutschendorf, Jr.)였고 그런 이유로 성을 바꾼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곳이 좋으면 이름을 바꿨을까? 우리 옛말에 다시는 그런일을 안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으로 내가 그일을 하면 성을 갈겠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 어떤 범죄자는 그 죄를 숨기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이름으로 바꾸는 일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자기 이름에 재수가 없다고 점쟁이나 철학관을 찾아가서 돈을 주고 좋다는 이름, 성공할 이름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름을 바꾸는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복받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이름은 나의 또 다른 증명서인데 이런 이유로 내이름을 바꿔 얻은 그 부와 명예와 인기의 갑옷은 진짜 나의 영혼을 얼마나 무겁게 짓누를까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존덴버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바뀌는 것은 주님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선포하는 증거로 바뀌어지는 이름의 역사입니다. 저의 이름 주활-어릴때는 놀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주(酒) 살활(活)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전자 주씨니 주인 주(主)로 부르며 니 인생은 니가 주인으로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뜻이 다 있다해도 지금 이름을 바꿀 수 없지만 이름의 의미는 바꿀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뜻이 아니라 주님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주 활의 뜻을 품고 살고 싶습니다. 붉을 주(朱)씨 이기에 예수님의 붉은 피로 적시며 살겠다는 뜻을 품고 살려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꾼 사람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뜻을 바꾸고 사는 것도 좋은 삶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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