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에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허용된 자유를 즐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단어입니다. 너무나도 멋진 단어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많은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바로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크고 마음이 넓은 사람만이 기꺼이 차이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너와 나의 차이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해 버리려는 흑백 논리적 사고가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속에 뿌리박고 있는 한 평안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이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남편에게 내놓았습니다. 남편은 몹시 난처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먹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비꼬듯 핀잔을 줍니다. “그놈의 집구석은 설탕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냐? 어떻게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냐?” 남편에게 일격을 당한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먹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대답하기를 “아니, 국수는 다시다 물에 말아 먹아여지.” 그러자 아내도 지지 않을 새라 “무슨 놈의 다시다 물이나? 그러면 앞으로 국수 요리는 당신이 해라.” 그렇게 해서 옥신각신 싸움이 되고 말았답니다. 결국 이 두 부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이장에게 가보기로 했답니다. 이장에게 물었습니다. 이장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거 봐라 남편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이게 무슨 창피냐.” 기세등등한 남편의 말이 끝기도 전에 이장이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국수를 다시다 물에 말아 먹는 사람도 처음 보았다.” 이번에는 새댁이 이겼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당신도 틀렸네. 뭘!” 그래서 티격태격 또 한판 이장 앞에서 싸움이 붙었습니다. 한참을 싸우던 이 부부, 이장한테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장님은 어떻게 드세요?” 그러자 이장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국수를 꽁 국물에 말아 먹는다!” 이렇게 사람 사는 곳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음식 문화가 다릅니다. 다른 문화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한규 목사님의 “사랑컬럼”에서 이런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몸 지체들이 비상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코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 우리 중에 혼자 놀고먹는 못된 백수가 한 놈 있습니다. 바로 저하고 제일 가까이 사는 입이라는 놈인데, 그 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혼자 다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 다 먹습니다. 이런 의리 없는 입을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발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도 입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주인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 무거운 몸으로 몸짱 만들겠다고 뛰니 발이 아파 죽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입이 혼자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때 손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입은 건방집니다. 먹을 때 자기 혼자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개나 닭을 보세요. 그것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잘 먹는데, 입은 날 보고 이거 갖다 달라 저거 갖다 달라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만 먹습니다. 정말 메스꺼워 견딜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비판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합시다. 앞으로는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절대 보지도 말고, 냄새 맡지도 말고, 입에게 가져다주지도 맙시다.” 그 제안이 통과되어 즉시 입을 굶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흘이 지났습니다. 손과 발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눈은 앞이 가물가물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코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조용히 있던 입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러면 우리가 다 죽습니다. 제가 저만 위해 먹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입술도 깨물고, 혀도 깨뭅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며 삽시다.” 그 말에 다른 지체들도 수긍하고 예전처럼 자기의 맡은 일을 해서 건강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차이는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공동체 정신의 꽃입니다. “누비이불정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색 저색, 각가지 천 조각을 꿰매어 만든 이불입니다. 이 누비이불 정신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입니다. 고정관념은 고장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오해(5해)가 있어도 세 번 “자기”를 빼고 생각하면 이해(2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차이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 너무도 쉽게 자리를 잡아버리는 배타와 편견을 버리고 이해와 관용으로 마음과 생각을 키울 때 평안과 행복의 문은 활짝 열릴 것입니다. “똘레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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