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dge-하나만 바꾸었는데...>

           Nudge라는 영어의 뜻은 “슬쩍 찌르다”는 말로 살짝 건드려만줘도 삶이 바뀌거나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으로 자발적인 행동의 변화를 설명한 리처드 탈러교수가 쓴 책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명화중에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멀리서 들려지는 교회종소리와 함께 종일 들녘에서 일을 하곤 하루해가 저물가는 황혼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그 안에 가득 넘치는 감사와 함께 아름다운 믿음이 어우러진 성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밀레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의 첫 그림은 좀 다른 그림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종의 첫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해 지는 넓은 들녘 초라한 부부가 마주보면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리는 것은 같지만 부부의 피곤한 발끝에 조그마한 아기의 관이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의 내용인즉 불쌍한 젊은 부부가 아기 관을 묻기 전 기도하는 비통한 모습이었습니다. 밀레가 그 그림을 먼저 잘 아는 선배에게 보여 주었을 때 그 선배가 이렇게 권면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애틋한 사연,아름다운 전원과 황혼,그리고 감사기도…. 다 좋은데 가운데 관이 맘에 걸리니 관 대신 바구니를 그려 넣으면 어떤가?” 그래서 밀레는 아기 관을 바구니로 고쳐 그렸더니 그 의미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전체 그림은 그대로인데 중간 하단에 바구니 하나 고쳐 그렸더니 비통한 장례식이 황혼의 감사로 승화되면서 불멸의 명화가 된 것입니다. 하나만 바꾸어도 그 가치가 변화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시인 김춘수님이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던 그의 노래 또한 같은 고백인듯 싶습니다. 작은 생각의 변화, 감사하는 기도 한 마디, 고맙다는 말씨 하나, 상냥한 미소와 친절하게 다가오며 내미는 손길, 늘 보던 시각에서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 보기만해도 Nudge효과로 나도 너도 달라질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나의 인생을 가치 있는 꽃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타치하고 계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보는 것도, 누군가를 바꿀수 있도록 내미는 나의 손길 또한 모두 소중한 Nudge의 손길이 아닐까요?

<발가락이 닮았다>

          세계적인 팝의 황제라고 불리우던 마이클 잭슨이 수년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일로 인해 세계가 떠들썩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잭슨 파이브라는 가족 보컬의 싱어로 시작한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노래실력과 댄스로 사람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를 이끌어 갈만큼 팝의 황제로써의 영향력이 있었고 그 덕분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뉴스거리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흑인이었던 그가 죽기 직전까지의 그의 외모는 흑인이 아닌 백인? 아니 어느쪽도 아닌 독특한 외모를 만들며 변화해 왔습니다. 수많은 성형수술과 치료로 인해 그의 외모가 변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이런 성형들이 부작용이 일어나면서 그에게는 치명적인 건강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죽은 이후 그의 삶의 관한 많은 것들이 알려졌는데 그중의 하나의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끊임없이 자신의 외모를 고치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상처가 있었는데 자신이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성형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치지 않아도 그의 재능과 실력이면 충분히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과거의 상처로부터 오는 미움과 증오,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는 무게는 세상의 모든 인기와 부를 얻어도 그를 두고두고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문득 한국의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인 김동인씨가 쓴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인 남편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인데 어느날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내를 사랑하기에 그 아이를 출산했을 때 주인공은 태어난 아이에게서 어떻하든지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를 씁니다. 얼굴부터 온몸을 다 둘러봐도 어느 한 곳도 닮은 곳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주인공은 그 아기의 발가락하나가 자신과 닮은 것을 찾아내고는 소리 지릅니다. “발가락이 닮았다!”라고. 사랑하면 닮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미워하면 닮은 것을 지워버리려고 애씁니다. 가끔 제 아이들이 외모나 성격,취향에서 저를 닮은 어떤 부분을 찾아내며 “이건 아빠 닮았네”하며 웃을때, 그리고 제눈에도 저희 자녀들에게서 저의 어떤 닮은 부분을 볼 때마다 저는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주님을 닮아가려는 애씀이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한 주님도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려고 애쓸 때 우리의 사랑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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