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국으로 이민 온 지 딱 15년이 되었다. 미국에 오기 위해 필자와 남편은 종로구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2001년 9월12일이었다. 지난 밤에 다려놓은 셔츠와 자켓을 차려 입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미대사관 앞에서 섰다. 그런데 전날 발발한 9·11사태로 인해 대사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우리는 네번의 서면 인터뷰를 거친 끝에 간신히 시애틀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우리 부부는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장이라도 본 날이면 양손에 비닐봉투를 가득 들고 한참을 걸어서 집까지 와야 했다. 이것저것 사야 할 것도 많은데, 무게를 생각하면 집까지 들고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는 품목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고물 자동차라도 한 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후에도 럭셔리한 미국 생활은 여전히 남의 이야기였다. 남편은 방과 후에 일주일내내 밤 12시까지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방 1칸짜리 아파트는 아기 물건들까지 더해져 발디딜 틈도 없는 공간이 되었고, 산후조리를 해주러 온 친정 엄마는 누울 방이 없어 거실 한 켠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결국 엄마는 제대로 된 방에서 잠 한번 자보지 못한 채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필자는 “방이 2칸만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또다른 바람을 가졌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도저히 학생신분을 유지할 수 없어서, 한국에서 받은 학위를 이용해 간신히 신문사에서 영주권을 스폰서해 주기로 했다. 신분이 연결되어 있다보니 박봉에도 군소리 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랬지만 결국 그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신분 유지를 위해 포커스 신문사를 창간했다. 달랑 2천불로 시작했던 신문사는 재정난으로 허덕였고, 창간 1년 만에 집을 숏세일로 처분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과다출혈로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이처럼 힘들고 어렵기만 한 이민생활이라면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며 살았다. 자동차 기름 한번 마음놓고 가득 채워보지 못하고 나의 이민생활은 그렇게 수 년이 흘렀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내가 갖고 싶은 차도 샀고, 남편이 갖고 싶은 것도 샀고, 드디어 시민권을 받았다.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일을 즐겼으며, 독자들은 한결같이 포커스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어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였다.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이것이 절망과 희망을 오간 필자의 지난 15년이었다. 독자 여러분들의 삶에도 필자 못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더 많은 후회와 억울함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연말연시는 때론 힘들고, 때론 즐거웠던 역동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평가하고 반성하는 시간이다. 우선 포커스의 평가부터 해보자. 올해초 세웠던 포커스의 계획은 상당히 일구었다. 취재보도, 기획시리즈 게재, 어린이 동요대회, 업소록 제작, 중앙일보제휴 인터넷 쇼핑몰 오픈, 콜로라도 한인청소년 문화재단 설립, SNS를 통한 전자신문 발송 등 올 초 목표의 80% 정도를 달성했다고 본다. 나머지 20%는 기사보도에 주저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부족함이다. 좁은 동네이다 보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변명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한인사회에서 11년을 지탱해온 베테랑 언론사인 만큼, 내년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신문,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서는 협조하는 신문, 정직하지 못한 업체에는 당당한 신문으로 그 역할을 더 할 생각이다.  다음은 콜로라도 주류사회와 한인사회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다. 매년 주간 포커스에서는 이맘 때 쯤이면 한해 동안 있었던 한인사회의 주요뉴스를 포함한 콜로라도 뉴스들을 정리해 발표한다.

         이번에도 역시 덴버는 조용한 동네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우선 콜로라도에서 한 해 동안 이슈가 된 사건을 되볼아보면 이렇다. 지난 8월, 똘튼의 한 건설현장에서 희귀한 토로사우루스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공룡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었다는 것이다. 또, 덴버 이스트 하이스쿨의 치어리더들이 연습 중에 다리찢기를 강요받아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감독은 사임, 코치는 해고당하는 사건은 전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3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다친 똘튼의 월마트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한국에서까지 토픽으로 보도되었다. 또 다른 화제뉴스는 지난 5월에 덴버 메트로 지역에 내린 우박을 동반한 폭풍이다. 이로 인해 수백 대의 자동차와 집들이 파손되었는데 특히, 콜로라도 밀스의 피해가 심각해 상점 대부분이 추수감사절이 되어서야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다. 이는 콜로라도 역사상 가장 큰 피해액으로 집계되었다. 이외에도 100년만에 찾아온 개기일식, 히큰루퍼 주시사의 임기 만료로 인해 이름 좀 있는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일도 주요 뉴스거리로 볼 수 있다.  한인사회는 타주에 비하면 아주 조용한 편이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보면 2017년은 2016년에 비해 경기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동산 매매가 활발해야 경제가 살아나는데, 사고자 혹은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실제 거래량은 2016년도보다 덜했다는 것이 한인사회 부동산 전문인들의 전언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풍요로웠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가 주최하는 어린이 동요대회와 쥬빌리 어린이 합창단, 한인합창단, 뉴라이프 가을음악회, 강정화 스튜디오의 전시회, 사진전, 태권도 한마당 대회 그리고 한국영화 <마스터>, <특별시민>, <군함도>, <택시운전사>, <남한산성> 등을 볼 수 있어 올 한해는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행사가 많았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커뮤티니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런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도 있다. 한인 대표 단체들의 활동이 저조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보니 새삼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기에 식상하지만 짚어본다. 당연히 해야 하는 총회를 본 지도 오래됐다. 또, 선거관리 위원회도 회장 되고 싶은 사람의 주변인으로 구성되고, 건설적인 이사회는 기대하기도 어렵다. 누구를 괴롭혀야 하는 건수가 생기면 한 두 번 모여 야합해 온 행태는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다 보니 덴버에 두 개의 한인회가 있지만 하나도 없는 듯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작 동포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못했다는 얘기다. 올해 발생했던 텍사스 재해민 돕기 모금 운동도, 북핵 사태 발발에 대한 한인사회의 입장 표명도, 점차 일본땅으로 되어가고 있는 독도에 대한 홍보활동도, 한국직항 노선 개설건 등에도 그 어떤 독자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른 단체가 하는 일에 숟가락 얹기 식이 아니라 독자적으로도 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 회장에 당선되면 엄연히 공약이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그 공약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다. 마치 비밀부대처럼 말이다. 이제부터는 끼리끼리 치르는 담합 선거의 모습이 아니라 공정한 선관위를 구성해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동포 사회가 인정하는 회장으로서, 교민들의 지지를 받는 한인사회의 대표로서 공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 한해는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이 열렸다. 그런데 명분 있는 행사가 아닌 이상 주최측의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하지를 말든지, 자기들끼리 먹고 즐기는 일회용 파티에 사람들에게 후원까지 받아가면서 동포사회에 부담을 안겨주는 모습은 절대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이제 2017년도 몇 일 남지 않았다. 올 한해 돈 못 벌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고 다독여 주면서 한 해를 마무리 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한국인의 저력을 자랑스러워하며 희망찬 2018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