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미래핵’ 카드를 선제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대단한 지략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시작되면, ‘현재핵’과 ‘과거핵’ 폐기에 대한 절차와 방법에 논의가 집중될 전망이다. 북미가 협상을 통해 일괄타결에 합의하더라도, 실제 비핵화 과정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 중단과 폐기, 완제품 형태로 보유한 핵무기 폐기를 위해선 먼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북한으로 파견돼 검증 사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핵 관련 시설 신고와 폐쇄·불능화·폐기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북핵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한다. 핵실험은 다른 곳에서 개발한 기폭장치와 영변 등에서 생산한 플루토늄·고농축 우라늄을 결합해 수천 분의 1초 안에 핵분열과 폭발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첫번째 핵실험을 했다. 이후에도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는 2009년, 2012년, 2016년, 지난해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이 이뤄졌다. 즉 풍계리 핵 실험장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서 종합시험장이자 핵기술의 집약체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풍계리를 북한 핵 개발의 상징으로 여겨 왔고, 정보 당국은 인공위성 등의 정보자산을 통해 이곳을 집중 감시해 왔다. 기폭장치와 핵물질을 확보하면 핵실험을 통해 기본탄의 폭발력을 실험한다. 이후 소형화와 위력 개선 등을 위해 핵실험은 필수다.

    북한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플루토늄탄과 고농축 우라늄탄, 증폭핵 분열탄, 수소폭탄 등을 실험했다. 기본탄을 만든 뒤 이를 응용해 폭발력을 높이고 소형화를 시도했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지하 핵실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 개발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병기화를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목숨줄과 같은 핵 개발의 상징을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폐쇄키로 했다고 북한 관영 언론들이 21일 밝힌 것이다. 핵무기 개발을 완성한 만큼 더 이상 핵실험의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 북한의 현재와 과거의 핵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지난해 7월 공개된 자료에서 미 국방정보국은 그간 생산한 핵분열 물질로 북한이 최대 핵탄두 60기를 제작할 수 있으며, 탄도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핵탄두 소형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일본 등을 타격권으로 하는 노동미사일부터 괌 등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때문에 실제 협상에선 핵물질·핵탄두와 함께 이른바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도 비중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발표에 대해 미국 조야에서는 환영의 목소리와 함께 싸늘한 시선도 적지 않다. 약속을 번번이 저버린 북한의 과거 행태에 비춰 북한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다. 북한의 이번 발표가 핵포기 선언이 아니라 핵보유 선언이라는 역설적인 분석도 만만치 않다. 리사 콜린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연구원은 "북한은 핵무기가 체제 보장과 생존의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고 헌법에 핵을 명시해 놓은 나라인데 하루아침에 기존 입장이 바뀌었다고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한 미국대사 후보였던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북한의 이번 발표는 비핵화 선언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북한이 책임있는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 발표문을 보면 시험 금지, 선사용 금지, 이송 금지 등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조건들을 열거하고 있어 북한이 핵보유국 행세를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래서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발표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자칫 잘못될 지도 모를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미국 측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나돌고 있다. 북한이 폐기하기로 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노후화됐고 붕괴 위험까지 있어 이번 폐기 선언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콜로라도 한인들에게 익숙한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폐기하겠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은 6차례 핵 실험을 통해 이미 노후화된 곳이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험장 일부 갱도가 이미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어 이 실험장을 폐기한다는 발표를 너무 긍정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북한의 기만전술일 가능성에 대한 경계론도 이처럼 비등한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정은의 이번 발표는 단연코 큰 진전이라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선언에 대해 "놀라운 발표"라고 평가하며, "이번 조치는 한반도의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데 외교를 활용하려는 더욱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전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제임스 마틴 핵무기 확산방지 연구센터 연구원은 CNN방송과 인터뷰하면서 "트럼프, 김정은 간 정상회담 가능성은 확실히 진전되었다. 북한의 특정한 양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허영심에 호소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상회담 전망은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진단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5일 앞둔 가운데 전격 제시된 북한의 핵실험 중단 및 경제건설 총력 등 '선제적 선언'이 '실질적인' 남·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첫 물꼬를 틀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긍정론도 대두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을 점검하는 일이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보기 힘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다. 기존 핵 물질이나 미사일 탄두에 대한 언급도 없다. 핵 동결과 관련해서도 핵 실험장 폐기 조치만 내놨을 뿐, 영변 등 핵 시설 가동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는 해석도 나오는 것이다. 사실 핵실험 중단이나 핵시설 폐기 선언은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 10·3 불능화 합의 등에 따라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지만 이 모든 것은 쇼로 판명되었고, 2013년 공개적으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핵폐기가 다가올 릴레이 정상회담의 목표이다. ‘핵 실험장 폐쇄’라는 충격요법이 대화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제재 완화를 노린 협상 기술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김정은이 핵 보유국임을 재차 천명한 것도 핵 폐기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고 보다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확고한 핵 폐기 약속과 그 로드맵을 받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대북 제재의 돌파구를 열고 경제 운용의 숨통을 틔우려는 의도이겠지만 북한의 자발적 조치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신들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국제사회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방안의 틀을 제대로 마련해, 북미 정상회담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합의를 견인해야 한다. 기존에 드러나 있는 핵 관련 시설뿐 아니라 땅속 깊숙이 숨겨둔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샅샅이 찾아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폐기돼야 할 것은 북한의 핵 실험장이 아니라 '핵'자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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