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가 북한 참여 없이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불참했다. 북한은 행사 직전까지 참석 여부도 알리지 않더니, 오히려 "남조선 당국은 자중 자숙하라"며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판문점 선언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해 발표한 공동 선언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가자는 것이 요지이다. 특히 연내 종전선언과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회담을 추진하여, 65년간 이어져 왔던 휴전 중인 한국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고 연내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다는 의의를 지녔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전세계는 곧바로 비핵화의 수순이 진행되고, 세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을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북한을 배려해 준 시간과 노력을 따져본다면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지난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에는 훈풍이 불었다. 한 해에 세번의 남북정상의 만남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판문점 선언에 합의하는 '찰떡 궁합'을 보였다. 이로 인해 남북 간 교류와 화해 분위기는 고조됐다. 그러다 지난해 5월 1차 미북정상회담이 한때 취소되자 두 정상은 '깜짝' 정상회담을 가지며 굳건한 남북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결국은 문 대통령의 중재로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맞잡으며 돈독한 남북관계를 또다시 과시했었다. 이때까지만해도 남북은 화해와 신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이견을 보이며 갈등의 조짐이 비쳤지만, 남북관계는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이 여파로 남북 관계도 소원해졌다. 결국 북한 없이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행사 당일 북한은 참석은 커녕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무분별한 전쟁연습 소동으로 얻을 것은 참담한 후회와 파국적 결과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면서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작년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만났던 군사분계선과 도보다리에서는 6차례의 연주회가 열렸다. 통일부와 서울시, 경기도가 공동 주최한 행사였다. 서울, 경기도 주민 등 4백여 명이 참석했지만 북측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은 '공동 합의' 의 의미가 큰 건데 우리만 기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렇게 한국 정부는 1년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주변국들이 보기에도 한국의 처지가 안쓰러운가 보다. 북한 전문가인 영국 리즈대의 에이든 카터 명예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북한을 '배은망덕한 거지'로 지칭했다. 한국을 폄훼하는 북한 행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얼굴에 침을 뱉는 것(spitting in Moon's eye)으로, 짧은 생각에서 나온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김정은은 한국의 선의가 마치 수도꼭지처럼 그가 원할 때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것으로 아는가"라고 했다. 또 김정은이 한국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등의 표현을 쓴 것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두 차례 주선해 준 데 대해 감사는 못할망정 문 대통령을 '다 쓴 타월'처럼 치워버렸다"고 김정은을 혹평했다.

     이렇게 대외적으로 체면을 구긴 한국은 내적으로도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일을 풀어나가도 어려운 형국인데 최근 한국의 집안사정은 화목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일주일내내 의원들은 싸움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회 의원들이 그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회기 때에는 보이지도 않던 의원들이 이번 싸움에는 총출동했다. 연장도 한개씩 챙긴 모양새다. 80년대 최루탄을 쏘고 쇠몽둥이를 든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자막을 읽으면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큰 아들이 밀고 당기고 때려 부수고 고함지르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서 "저 사람들 왜 저래"라고 물었다. 그러나 필자는 곧바로 답해 주지 못했다. 이번 당쟁은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한국당을 제외한 4당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패스트 트랙에는 선거법 개정 외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및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법이 3종 세트로 묶였다.

      패스트 트랙 지정을 둘러싼 여야 대치장에서는 망치와 빠루가 등장했다. 회의실 문을 부수기 위해서다. 사·보임 신청서를 팩스로 제출하는가 하면, 국회의장은 병상에서 결재하고, 법안을 전자 제출하는 등 새로운 날치기 수법까지 등장했다. 여당은 검찰로 달려가고, 야당은 거리로 뛰쳐나가 사법 처리와 장외 시위로 상대방을 겁박하고 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동물국회의 시대가 도래된 모습이다. 기존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표 대결로 각 당 의석이 정해지는 반면, 새 제도는 정당 득표율로 각 당 전체 의석을 정한 뒤 그 안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배분한다. 축구 시합이 배구 시합으로 바뀐다고 할 정도로 큰 변화다. 선거제도 자체로 한국당 의석이 줄어드는 데다 친박 성향 신당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당에만 치명적이다. 나머지 4당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이유다. 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나머지 4당만의 합의로 선거제도를 바꿔 내년 4월 총선부터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날치기 처리는 있었지만 게임의 규칙인 선거제도만은 여야 합의로 정한다는 원칙이 지켜져 왔다. 특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에는 국회 의원 자신들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사회 지도층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 커녕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빼버린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밀어붙이는 쪽도, 막는 쪽도 국민의 이익이나 민생은 안중에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정당과 정파의 이해득실만 따질 뿐이다. 이처럼 밖으로는 한미 공조 악화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판문점 선언 1주기에는 함께 있어야 할 북한에게조차 배신당하고, 내부적으로는 국정 전쟁까지 벌어졌다. 꽉 막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정국이다. 하지만 숨통을 틔울 정치적 해법은 있기 마련이다.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동포들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진다. 이쪽저쪽 편들다가 결국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다는 이유로 망치들고 국회로 가는 정치인에게 박수쳐 줄 국민은 아무도 없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이성적인 해법이 절실하다. 남북 대화도 중요하지만, 국내 정치 안정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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