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창세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99세가 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100세가 되는 내년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실 거면 바로 주실 것이지, 25년이라는 이다지도 긴 세월을 끌고 오셨을까?”하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단순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17: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의 히브리어는‘엘 솨다이’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연 법칙을 초월해서라도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분임을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은 이 이름을 통하여 비록 지금 아브라함이 늙었으나 그로 하여금 ‘모든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께 있음을 아브라함에게 각인시키시고 계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엘 솨다이’의 하나님은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하시고야 마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어지는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마디로 자신을 가나안 땅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바로 이‘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이‘엘솨다이’의 하나님에 대하여 언제 가장 절절한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는 렛슨이 이루어질까요? 그것은 어쩌면 내 힘과 능력으로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고 느낄 때가 아닐까요? 사람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될 때는 그 힘 믿고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이라는 육신의 열매를 맺는 엉뚱한 짓을 합니다. 그때‘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해 봐야 실감이 나겠습니까? ‘하나님, 내게도 이스마엘을 낳을 만한 능력이 있어요. 이거 왜 이래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힘, 알량한 자신감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25년이 흘러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알아가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도대체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신앙생활 하십니까? 대게 믿음이 어설플 때는 하나님도 사람과 비슷한 존재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대합니다.‘뭐 하나님이라고 뭐든지 다 하실 수 있겠어? 못하실 일도 있으시겠지. 하나님이 못하실 일은 우리가 하면 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으시다면 내가 이루기를 원하는 일을 위해 그분의 능력을 좀 이용해 먹지 뭐’ 여러분 어떠세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믿음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뭡니까?‘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렛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렛슨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아브라함, 사라’로 바꿔 주시면서‘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시겠다고 재차 약속하시며‘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요? 99세입니다. 이 말씀을 아브라함이 들었을 때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창세기17:17)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 아브라함만 웃었습니까? 사라도 웃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장막 뒤에서 엿듣고 있던 사라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세기18:11-14) 자신들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헛웃음을 웃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일 년이 지난 후 약속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시고야 맙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세기21:5-6) 1년 전의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이‘쓴 웃음’이었다면, 이삭을 낳고 난 후의 이 웃음은 어떤 의미의 웃음이었을까요? 처음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 웃음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 나온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웃는 웃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본 후에 웃는 온전한 웃음이었습니다. 사라는 도저히 성취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을 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만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웃음을 웃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맛본 자만이 웃을 수 있는 큰 웃음인 것입니다. 2020년 한 해에는 이 웃음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으시기 바랍니다. ‘엘 솨다이’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기쁨 말입니다. ‘엘 솨다이’의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며 사십시오! ‘엘 솨다이’의 하나님 앞에 저항하시지 말고, 힘 빼고, 항복하고 사십시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철떡 같이 믿고 사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엘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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