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정읍군(정읍시로 승격) 상평리’에서 ‘소성면’에 있는 ‘소성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거리가 약 5마일(8km) 정도였습니다. 여섯 살 어린 학생에게는 꽤 먼 거리였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움 중에 하나는 바로 미친 여인이 가끔 긴 막대기를 들고 등교 길을 가로 막는 것이었습니다. 대략 100여명의 학생들이 이 미친 여자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빨리 길을 열어 주지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한 시간 정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가끔 이 여인을 피해 먼 길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으면 이 여인이 달려가서 잡아왔습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금방 잡혔습니다. 모든 학생이 아예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줄을 세워 앉히고는 노래를 시키기도 하고 배운 것을 말해보라고 시켰습니다. 아무튼 이 여인이 기분이 좋아져야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구구단을 외우는 일이었습니다. 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 앞에서 구구단을 끝까지 잘 외우면 집에 갈 수 있었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벌을 받은 후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구구단을 끝까지 잘 외우다가도 선생님 앞에서 외울 때 자주 틀렸습니다.

구구단을 외우다가 틀린 학생들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남은 일들을 다 처리하신 후에 교실에 오셨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후에 오셔서 구구단을 잘 암송하는 지를 테스트하셨습니다.

혼자서 어두워져가는 길을 정신없이 달려갈 때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옆에 호밀밭이 있었습니다. ‘호밀’은 ‘밀’보다 키가 컸습니다. 그 호밀 밭에 가끔 문둥병(나병)자가 나타나 어린 학생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문둥병은 불치의 병이지만 어린이의 간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둥병자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과자나 음식으로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과자는 비싸기도 하지만 문둥병자가 가게에 나타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깐 밥(누룽지)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가마솥으로 밥을 한 후에 바닥에 눌어 있는 누룽지를 닳아져 반달 모양이 된 놋숟가락으로 긁으면 노릿 노릿한 누룽지를 얻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호밀밭에서 ‘깐 밥 줄게 이리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쪽을 바라보니 호밀 위로 누룽지가 보였습니다. 저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차 쉬고 싶었지만 뒤에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뒤에서 어린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이웃 동네 학생들이었습니다. 안심이 되어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 학생의 손에 누룽지가 들려있었습니다. 속았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혼자서 오는 저와 함께 가려고 기다리다가 놀려줄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학교 다니는데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학교 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 것은 학구열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강의록’ 광고를 자주 보았습니다. 광고 내용은 ‘독학으로 링컨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었습니다. 그러나 독학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보다 정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지적으로 성장하려면 학교생활에 충실해야 하듯이 신앙생활이 성숙해 지려면 교회생활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 다닌 지가 어림잡아 47년이 되어갑니다만, 제 경험에 의하면 교회를 떠나 혼자서 신앙생활이 성숙해진 분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기를 원하면 어려움이 많더라도 교회를 꾸준히 다니는 것이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