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목사/새소망장로교회

 지난 2월 3일이 한국 설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인가 고국에서는 구정 설날을 많이들 세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에 때때옷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지 어른들께 세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다니면서 서로서로에게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온 것이 벌써 20년이 되는 해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빠르다는데 동감하는 것 같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몇 년째야?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하면서 속상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만난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고향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고향은 부모님이 있어서 고향이다. 혈육을 함께 나눈 형제가 있어서 고향이다. 거기에 어떻게든 마음이 날아가서 잠시라도 머물 수 있기에 고향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는 행복감이 젖어온다. 아무리 미워했어도 잠시라도 마음이 머물러야 하는 그것은 잊지 못할 사람이 있어서다. 원망이 많았어도 품어야 하는 그 것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그 기억들로 잠시 멀어지는 듯한 그 곳일지라도 그 속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다가가서 고향이리라. 이런 고향이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존재할까? 그곳은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설날을 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고향을 잊은 것은 아니겠거니 했는데, 희미해진 것 같아 보인다. 설날 때문이 아니라는 것 너무 잘 안다.

 영원한 고향이 있을까? 문득 문득 생각나고 사무치는 그런 곳, 영원한 고향이 있을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그리운 곳. 그래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고향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의 사랑이 그렇게 귀한 줄을 모르고 살았는데, 철들고 보니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를 알아 간다. 그 사랑 알고 나서 그 사랑의 발전소가 어디였는가를 알아간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을 또 사랑한다. 몰라줘도 알아줘도 쉴 틈 없이 사랑한다. 부딪혔어도, 아파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우리는 이 사랑의 뿌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 다 가져도, 세상을 다 호령할 만큼 많이 알아도 사랑이 아니면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공허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이 머무는 그 곳은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낸다.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따지느냐고 성화를 낸다. 고향도 내 한 몸 죽으면 끝나는 거지 뭘 그리 정을 들이느냐면 서도 울먹이는 사람이 있다. 세상 이치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왜 영원한 고향을 생각해보지 않을까? 우리가 눈에 보는 고향을 통해서 영원한 고향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놓은 분이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는 사람들조차도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사모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현대는 세상의 좋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누려보고 싶은 것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가? 세상에 정들 수 없는데 왜 세상에 그렇게 정을 쌓으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태어나고 정든 고향을 사모하는 것도 아니면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의 뿌리를 찾자! 사랑의 발전소에서 내려주는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호령하자! 찾으면 찾아지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고, 구하면 얻게 된다. 간절히 잦아보자! 영원한 고향이 있느냐고, 있으면 우리가 가지 않을 수 없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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