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또다시 제기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폭탄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양국 간은 하루가 멀다하고 ‘미친 놈’, ‘악랄한 독재정권’이란 막말을 해대며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상태에서 경제 네트워크를 다시 짜자는‘대중 봉쇄’ 카드를 내놓았고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맞불을 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애초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고의적으로 그러지 않았다면서 '우한 바이러스 실험실 유출'을 거론하고 나섰다.

미국에서 주목한 곳은 우한 국가생물안전실험실이다. 위험한 병원균·바이러스를 취급하는 생물안전성 최고 4등급 실험실이다. 여기서 쥐와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기능 강화' 실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거꾸로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는 미국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지금까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실험실 유출'은 아닐지 몰라도 '바이러스 확산 은폐' 책임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 대 사람 전염을 공식 인정한 것은 감염자가 3천 명이나 나온 1월 20일경이었다. 그런데도 우한에서는 1월 18일 대규모 음식 축제가 열렸고, 춘제 연휴를 앞두고 인구 거의 절반이 각지로 흩어졌다. 중국 정부가 1주일만 먼저 움직였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세계적 중론이다.

또, 독일 정보기관에 따르면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을 늦춰 달라고 직접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WHO가 코로나 19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3월 11일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나타났다고 밝힌 지 70여 일 만이다. 이미 세계 110여 개국에서 12만 명의 감염자가 나온 상황이었다. 한국·이탈리아·이란 등으로도 퍼질만큼 퍼졌던 시점이다. WHO가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로 74개국에서 3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팬데믹을 선포한 것에 비하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시점은 상당히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은폐식 정보정책으로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4~6주 낭비했다는 비난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현재 중국을 향해 모든 공격 카드를 동원하고 있다. 우선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미국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즉 외국 기업을 동원해 화웨이의 조달선을 끊겠다는 것이다. 아웃소싱을 통해 해외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할 계획도 추진 중이다. 예로 든 것이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의 대표 IT 기업 '애플'이다. 자국 핵심 기업에 세금 폭탄을 때려서라도 생산 기지를 옮겨 오겠다는 계산이다.

또 '미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해, 화웨이·ZTE·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통신 기업들의 미국 내 영업을 1년 더 막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회계기준을 살펴보고, 미국 연방 연기금에 중국 기업 투자 계획을 중단하라고도 지시했다. 이 외에도 미국은 다방면으로 중국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중국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경제적으로는 미국 기업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기에는 퀄컴, 애플 등을 조사하고, 보잉사 항공기를 사지 않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매우 난처해졌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누구 편을 들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 20일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해 추진 중인 '경제 번영 네트워크' 구상을 한국에 제안했다.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뜻이다. 면 중국은 연내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에 일대일로(중국 주도 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일대일로를 중국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 확대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일대일로 참여시 한미동맹의 균열이 우려되는 이유다. 정치·군사적으로는 혈맹인 미국의 입장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역 전반에서 미국의 대중 봉쇄 구상을 따라가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막대하다. 한국 정부는 올해 초 국민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중국발 코로나 감염자들의 입국도 제지하지 않았을 정도로 시진핑의 방한을 고대해왔다.

이렇게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격화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기회를 역으로 활용해야 한다. 시 주석이 우리 초청에 앞서 스스로 방한 의사를 밝히도록 유도하고, 그의 방한이 미·중 간 긴장 요소가 없는 의제로 조정하는 전략적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한국과 말하기 싫다는 김정은만 붙들고 있으면, 미국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예상대로 북한은 지난주 핵·미사일로 미국과 한국을 함께 조준했다. 전방위 대미, 대남 도발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비현실적인 남북 교류 확대를 외친다면 한국의 외교적 입지만 줄어들 뿐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자신의 방역 실패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고 있다는 견해도 많다. 하지만 대선과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더라도 미중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때마다 고래싸움에 우리 등만 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전체 수출액의 25%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장을 중동·유럽·남미 등으로 다변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호관계는 유지하되 미국과 중국에 대한 국방과 경제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어야 한다. 이 위기를 영리하게 이용해, 외교와 경제 둘 다 성공하는 고난도의 전략을 구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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