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무역전쟁,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둘러싼 책임 전가 등으로 차곡차곡 쌓여온 양국의 대결 갈등이 결국 ‘홍콩 국가보안법’을 계기로 폭발했다. 지난 주말, 자유무역의 상징인 홍콩의 운명이 정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8일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간단히 말하면, 중국이 홍콩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예방하고 단속 및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제 홍콩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보안법으로 인해 중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본토에서 겪는 것처럼 홍콩에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류샤오보 박사는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문서를 공동으로 작성한 후 국가 전복 모의 혐의로 11년간 옥살이를 했다. 홍콩에 사실상의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보안법은 9월 전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맞닿아있다. 홍콩은 중국과 영국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에 따라 영국식민지가 된 지 155년만인 1997년 7월에 중국 영토로 반환되었다. 그러나 홍콩은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아왔다. 중국은 소위 '일국양제'라는 원칙과 홍콩의 미니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기본법에 대해 합의했다. 이는 홍콩에서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법 독립과 몇몇 민주주의적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일국양제는 중국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공존시키는 것으로,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중국의 통치원칙이며 대만 통일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은 홍콩 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미국의 비판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해왔다.  

미국은 홍콩의 정치적 변화 속에서도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에 근거해 중국 본토와는 다른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왔다. 이 법은 미국이 홍콩에 무역, 관세, 투자,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의 여타 지역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감한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 허용 등의 혜택을 주는 내용도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1월 홍콩의 자치권과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의회가 통과시킨 홍콩인권법에 서명했다. 이 두 법은 미국이 매년 평가를 통해 홍콩의 자치권이 일정 수준에 미달할 경우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의 인권 유린 등 기본권을 억압하는 인물에 대한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할 수 있는 내용도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홍콩 특별지위 철폐 발표는 미국 입장에서 '일국양제'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자마자 예상대로 발끈한 트럼프는 관세 및 무비자 입국을 포함한 홍콩에 대한 모든 특별대우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에 반발해 홍콩에 준 특별 지위를 없애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그 동안 홍콩이 아시아 대표 금융·물류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홍콩이 자치권을 행사한다는 전제하에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받았던 중국 본토와는 다른 혜택 덕분이었다. 이제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에 담긴 특별대우 조항이 28년 만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품목에 대한 관세는 기존 1%대에서 최대 25%까지 크게 올라가게 된다. 중국에 적용 중인 보복 관세가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미국은 홍콩의 기능을 중요하게 여긴 대표적 나라 중 하나다. 그 동안 미국은 홍콩을 중국과 별개인 세계 금융 중심지로 여겨 무역, 관세, 투자상 많은 혜택을 제공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부터 중국과의 무역전쟁 중에도, 중국 기업에는 제재를 가해도 홍콩은 제외시켰다. 덕분에 홍콩은 미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다. 홍콩의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미국의 무역수지 역시 손해를 입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홍콩을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통로로 철저히 활용해온 중국도 미국의 홍콩에 대한 특혜가 박탈되면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속내를 알고 있는 중국은 자신만만해 보인다. 어차피 미국은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이기 때문에 그럴 바엔 보안법으로 홍콩이라도 제대로 붙잡아 놓고, 장기항전을 벌이는 게 낫다는 것이 시진핑의 속내다. 중국은 '홍콩의 죽음'으로 돈줄이 끊기더라도 홍콩 사안만큼은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겠다는 의중이다. 이래저래 홍콩의 미래는 암울하다.

미국이 특별지위를 없애지 않더라도 중국 정부의 입김이 강해진 홍콩에 해외 기업들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방과 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중국 침략’의 상징이 된 홍콩은, 다시 강대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제물이 될 처지다. 미·중 모두 지금 시점에서 대결을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홍콩에서는 매일같이 홍콩 보안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홍콩 보안법을 중국의 반인권적 통제 수단으로 규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함성 '촛불 혁명'으로 부활한 나라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은 홍콩에 관한 한 침묵의 선에 서 있는 듯하다. 하지만 홍콩 보안법에 침묵하거나 동조한다면, 국가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 표명도 필요할 법하다. 누군가의 불행은 다른 누구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 본사를 둔 기업인들은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의 금융 허브 대안을 찾고 있다. 홍콩을 대신할 금융 무역의 도시가 싱가포르나 도쿄, 서울로 옮겨 갈 수도 있다. 한국이 이번 사태를 심도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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