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온라인에 뜬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이 이렇습니다. “NASA 위성에 잡힌 메마른 아랄해…'옷 탐욕'이 낳은 대재앙” “옷에 대한 탐욕이 호수 하나를 마르게 한다고?” 이런 조금은 의아한 마음 속 질문을 가지고 뉴스의 내용을 살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아랄해’라는 함수호(鹹水湖·염분이 많아 물맛이 짠 호수)가 있답니다. 그리스어로 '섬들의 바다'라는 뜻인데, 50년 전만 해도 면적이 남한의 절반이 넘었을 정도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호수가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면화(목화) 재배를 위해 이 호수로 들어오던 두 개의 강(아무 다랴, 시를 다랴)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우즈베키스탄은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 됐지만, 아랄해는 이전의 10분의 1 정도로 쪼그라들고, 지금 아랄해는 죽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호스의 사막화로 염분이 증가하면서 물고기들은 거의 전멸했고, 소금먼지로 인해 호수 주변에서 사는 주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랄해의 사막화는 인간 탐욕이 불러온 ‘지구촌 최악의 환경재앙’이 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훼손, 환경오염, 기후변화’는 거의 재앙수준이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 재앙의 배후에는 인간 탐욕의 죄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시며 자신의 창조물에 대하여 스스로 감탄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간에게 청지기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1:28). 한마디로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통치권입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자신이 쓴 책 ‘행동하는 기독교’에서 “그러나 통치권은 소유권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과 환경을 파괴시키는 인간 탐욕은 바로 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행사하려는 교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다스리라”는 말씀 속에 “소유하라”는 의미까지 포함해서 위임된 통치권을 행사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내 소유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분별한 산림훼손이나 경제적 이득과 돈 벌이를 위해서는 환경이 파괴되든 말든 개발부터 하고 보는 인간 탐욕의 무책임성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서두에서 꺼낸 ‘옷 탐욕’기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는 생소한 용어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패스트 푸드를 먹듯이 옷도 일회용품처럼 쉽게 사고 버리는 요즘 풍조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의 패션 트랜드는 질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보다 싸면서도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옷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1년에 만들어지는 옷이 1000억벌이 넘는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옷이 만들어지려면 ‘목화(면화)’를 더 많이 재배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목화 재배에는 쌀, 밀 같은 식용작물보다 훨씬 많은 ‘물’이 필요합니다. 1kg의 면을 생산하려면 욕조 40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물(8500L)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버리는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 2700L이 필요한데, 이 정도면 한 사람이 3년 동안 식수로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펜데믹 상황이 닥치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멈췄습니다. 사람이 멈추자 공기의 질이 좋아졌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구환경 파괴의 장본이 다름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10년 전에 개봉되었던 ‘컨테이젼(Contagion)’이라는 영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염병이 박쥐에서 중간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되는 경로를 보여주면서 개봉당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코로나19를 예견한 듯하다는 평을 지금에 와서야 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주목한 것은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이 된 박쥐나 중간숙주(새끼돼지)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산림자원의 훼손, 이로 인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감소에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환경파괴를 바이러스 전파의 출발점으로 본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책 ‘행동하는 기독교’에서 볼프는 이런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우리는 창조 세계의 자원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낭비는 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족하며 살아야 하고,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새로운 상품들을 사고 싶은 압박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 하나가 큰 영향을 끼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는 개인과 사업체가 환경 친화적 실천을 채택하고, 창조 세계에 심각하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권해야 한다”. 이제는 교만하게 ‘소유권’을 두 손에 움켜쥐고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은 탐욕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참으로 겸손하게 창조 세계에 대한 위임 통치자요 그리고 환경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절실하게 감당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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