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메모리얼 데이 저녁,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살고 있는 17세 흑인 소녀 다닐라 프레이저는 사촌과 함께 동네에 있는 가게로 가던 길에 경찰이 한 흑인 남성을 체포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프레이저는 곧바로 자신의 아이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 동영상에는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남성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 흑인 남성이 숨을 못 쉬겠다고 애걸하며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는 소리도 가느다랗게 들린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흑인 남성이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백인 경찰의 무릎은 여전히 그의 목을 누르고 있다. 경찰은 무관심할 정도로 누르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응급대원이 와서 그의 등을 두드릴 때까지도 그 경찰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이 영상에는 한 흑인 남성이 숨쉬기 힘들다고 애원하는 모습과 조용히 숨이 끊어지는 과정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흑인 여고생에 의해 촬영된 이 10분6초짜리 동영상은 소셜 미디어에 공개되자마자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날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리고 수갑을 채우고도 그의 목을  9분 가까이 눌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 쇼빈에게는 2급 살인 혐의가 적용됐고, 함께 있었던 세 명의 경찰관은 쇼빈의 살인 행위를 방조한 죄로 2급살인 공모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의 잔인한 공권력 사용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발했다.  그리고 시위는 LA, 애틀란타,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현재까지도 콜로라도를 포함한 50개 주, 650곳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다소 진정되었다고 하지만, 초기에는 도시마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주 방위군이 투입될 정도로 시위는 과격했다.

   이 과정에서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면서 시위의 의도가 왜곡되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피해자는 한인들이었다. 흑인들에 의해 미니애폴리스, 시카고, 뉴욕 등에 있는 한인들의 마트와 점포들은 박살이 났다. 흑인들은 매장 내의 물건을 죄다 훔쳐가는 것도 모자라 방화까지 저질렀다. 20년간 일구어온 아메리칸 드림이 이번 시위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는 뉴욕 거주 한인은 한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시위가 벌어진 주변에 있던 한인 150여업체가 날벼락을 맞았다. 위조지폐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마약을 하지도 않았고, 경찰에 불복종을 하지도 않았고, 범법 행위를 하지도 않은 무고한 한인들이 왜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에게 이러한  장면들은 플로이드의 죽음만큼이나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위 중에 일어난 약탈과 폭력은 시위대가 한 짓이 아니라고 하지만, 한인 상가를 약탈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흑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시위대의 일원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천대 아닌 천대를 받아왔다던 흑인들의 화풀이 대상이 한인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8년전, 우리는 1992년  LA에서 발생했던 4.29 폭동을 기억한다. 미주 한인사회 이민사의 최대 비극으로 얼룩진 이 폭동으로 인해 당시 LA 한인사회는 초토화되었다. 폭동의 시발점은 경찰의 검문 지시를 무시하고 차량 도주극을 벌인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남자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LA 경찰국 소속 경찰관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는 비디오가 공개되면서이다. 흑인들은 이 비디오를 보며 울분을 터뜨렸지만, 1992년 4월 배심원단은 경관 4명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흑인사회는 분노했고, 그때도 피해는 사건과 무관했던 한인사회가 고스란히 입었다. 이번 사건과 비교하면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러한 역사를 잘 알고 있기에 한인사회는 이번 플로이드 사태로 인한 제2의 폭동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한창이었던 지난 10일,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60대 한인 남성은 버스정류장에서 흑인 남성에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지난 3월, 뉴욕의 한인 여성은 마스크를 착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 여성에게 얼굴을 가격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LA에서는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숨을 쉴 수가 없다"는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한인 할아버지가 흑인에게 이유없이 맞은 날에도 흑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인을 포함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놔두고 왜 흑인 운동에 나서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시위가 확산되면서 공권력 남용과 유색인종의 인권 보호라는 목적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이번 시위의 애초 목적은 흑인 차별에 대한 항의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는 분명 경찰의 과도한 대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차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고한 시민들의 상점을 약탈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백인에게 차별당했다고 날뛰고 있는 흑인들은 오히려 한인들을 차별해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한인들이 흑인들에게 욕설을 듣고, 두들겨 맞고, 약탈을 당해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우리는 어떤 시위를 해왔을까.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견뎌온 우리의 아픔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우리에게는 좀 더 논리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흑인사회에 복수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흑백의 문제에 숟가락을 얹기보다는 아시안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다. 아시안들을 위해 흑인들이 나서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돈을 모아 흑인들을 도와주는 것보다 약탈당하고 희망잃은 우리 한인들을 돕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금은 한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응집해야 할 때이다.

   미국이 존재하는 한 색깔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력 시위가 동반된다면, 이는 색깔만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리 밥그릇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 지긋지긋한 색깔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한인들의 가치를 차근차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아시안들의 삶도 중요하다(Asian Lives Matter,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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