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 흔히들 말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얼마전 아이들 반찬을 준비하며 스팸을 자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알루미늄 캔에 든 스팸을 도마 위에 꺼내 항상 세로로 세워놓고 잘랐던 나와는 정반대로, 남편은 스팸을 가로로 자르고 있었다.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남편이 스팸을 자르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처럼 한집에 사는 가족도 사소한 것에서 각자의 방식을 택하는데, 하물며 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더할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안을 놓고 오로라 시장을 비롯해 시 의원들 간에 팽팽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알리슨 쿰스 시 의원이 상정하겠다는 최저임금 인상안의 골자는 향후 7년간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 2027년까지 시간당 20달러로 올리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로라시의 물가는 타지역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이며, 이 물가에 비례해서 방 2개짜리 집에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간당 25달러는 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가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조금씩 활성화된다는 논리가 바탕이 되었다. 쉽게 말해 많이 벌면 더 많이 쓰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로라시에서 자영업을 하고,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사업체의 입장에서는 이 법안이 달갑지 않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공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시간당 임금을 올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심기 불편한 얘기일 수 밖에 없다. 또, 팬데믹이 끝난다고 해도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사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이 법안은 이래저래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법안에 찬성을 하는 이들도 있다.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고용인들이다. 시간당 돈을 버는 사람들이니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것을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실제로 지난  5년동안 병원에서 리셥션니스트로 일해왔던 한 지인은 이 법안에 대한 내용이 보도된 후 하루에 5시간만 일해도 100달러를 벌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콜로라도에서 오랫동안 동상이몽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업체는 리커스토어와 그로서리점이었다. 리커스토어는 지난 20년간 한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사업체였다. 콜로라도에서 술은 리커스토어만의 영역이었지만, 사실 타주에서 온 사람들은 리커스토어에서만 술을 사야만 한다는 이 곳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콜로라도주에서 리커스토어는 작은 규모라고 해도 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한인뿐만 아니라 소수인종들이 선호하는 스몰 비즈니스의 대표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1월 새 주류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식품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는 마지막 주였을 정도로 오랫동안 주 정부의 보호를 받아온 업종이기도 했다. 동시에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업종군이었다. 때문에 다수의 콜로라도 한인들은 리커스토어의 입장에서 ‘그로서리점에서 일반 술 판매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결국 지난해 1월부터 그로서리점에서 일반 술을 팔아도 된다는 새 주류법은 시행되었고, 리커스토어에서도 식품 판매를 허용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인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들은 이 법이 통과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서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로서리점이나 주유소를 경영해온 한인들은 제법 많았다. 그들은 법이 통과되자, 신문지상에서 리커스토어 편만 들어주는 것 같아서 속상했었다 면서 20년동안 그로서리를 운영해오면서, 작년만큼 수입이 올랐던 적이 없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수개월 전부터 콜로라도 한인사회내 여러 단체에서는 교민들을 위해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물론 본지도 마스크 2천장을 무료로 배부했었다. 다들 교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 마스크라는 생각에 열심히 준비해서 마트 앞이나 각 사무실에서 나눠주었다. 나름 이 시기에 가장 적절한 일이며, 또한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했다. 마스크를 받아간 교민들도 진심으로 고마워했기 때문에 특별히 논란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최근 신문사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마스크 배부에 대한 또다른 동상이몽을 경험했다. 그 사람은 배부처에서 나눠 준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르신들은 단순히 받아간 마스크에 의존하게 되어 더 쉽게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해서 실천했던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모든 일에는 양면의 칼날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안도 양측 다 득실이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언뜻 보면 일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좋아 보이지만, 고용주는 임금을 많이 줘야하는 직원을 고용하기 꺼려서 오히려 지금보다 일할 기회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또, 새 주류법은 리커스토어들의 파산까지 예견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금은 새로운 영역까지 슬기롭게 개척해나가고 있다. 마스크 배부도 팬데믹 상황을 함께 극복해 나가기 위한 선행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면 된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만감을 교차시키는 발언들이 난무한다. 야당시절 당당하게 내뱉었던 말이 여당이 되고 나니 독이 되기도 하고, 국가를 위한 진심어린 발언도 각계각층에서 새롭게 재해석되는 일이 빈번하다.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상이몽을 보면 희로애락은 주관적인 인식에 달린 것이 분명하다. 고 법정 스님은 ‘자기 나름의 이해’는 곧 ‘오해의 발판’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경제적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하지만 6개월 후에는 분명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럴 때일수록 한 템포 쉬면서 그동안 자기 마음대로 이해한 부분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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