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장로교회 이동훈 담임목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힘든 시간이 거의 반년 이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결핍을 가져왔습니다. 움직임의 결핍, 여행의 결핍, 만남의 결핍, 경제활동의 결핍 등, 삶 전반에 걸쳐 채워지지 않는 결핍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핍의 확장은 우울감을 가져옵니다. 그래서‘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길어지면서 단순한 우울감을 넘어 분노의 단계까지 접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레드’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감옥이라는 무한 결핍의 현장 속에서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자족며 지내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입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면서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그는 자신이 감옥 살이를 한다고 우울해 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4:11-12). 감옥속에서도 그는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결혼도 못하고 자녀도 없으며, 권세도, 돈도, 안락한 집도 없습니다. 감옥이 그의 집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요? 사도 바울 선생님은‘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여기‘자족’은 헬라어로‘아우타르케스’라는 단어인데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는,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 충족감’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높은데 있다고 교만하거나, 낮은데 있다고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웬만한 평지풍파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내적인 만족감으로 인해 어떤 유혹이나 시련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은‘성숙한 인격의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인격이 덜 성숙한 어린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도무지 참지를 못합니다. 무작정 부모를 조르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의 특징도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 선생님의 형편은 궁핍합니다. 실제로 바울 선생님은 지금 감옥살이로 인해 궁핍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참 비천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단순한 결핍이나 부족함으로 인해 불편한 정도가 아닙니다. 비천하기 짝이 없고 심히 배가 고픕니다. 왜 하나님은 사도 바울 선생님을 이런 궁핍한 환경 속에 그냥 내버려 두셨을까요?

    그 중요한 선교 사역을 위한 필요들을 왜 즉시로 채워주시기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도 바울 선생님의 ‘배웠다’라는 고백 속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 선생님으로 하여금 ‘자족함’을 배우도록 하시기 위해 물질적인 공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셨다는 말입니다. 자족을 배우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족함’은 훈련을 통해, 배움을 통해 습득하는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4:11절과 12절의‘배우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11절의 ‘배우다’의 헬라어는 ‘에마돈’인데 경험과 체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입니다. 12절의‘배우다’는‘뮈에오’인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수받고 가르침 받아서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끊임없이 배웠습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므로 배웠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법을 전수 받으므로 예수님처럼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이 주어져도 그 상황 가운데 처하며 자족할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님에게서 이런 위대한 고백이 나왔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이 말은 자신이 초능력자가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모든 것”은 앞에서 바울 선생님이 말한‘비천함, 배부름, 배고픔, 궁핍, 풍부’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배고프다고 원망하지 않고, 비천하다고 비굴해 지지 않고, 배부르다고 게으르지 않고, 궁핍하다고 도둑질하지 않고, 풍부하다고 교만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환경들이 변할 때마다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헌신이 왔다 갔다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I can do everything”의 의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격고 있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결핍들은 사도 바울 선생님이 누렸던 자족의 은혜를 배우는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울해하고 분노하고 있기보다 자족할 줄 아는 삶을 훈련하고, 어떠한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에‘민들레는 화단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민들레만큼 어느 환경에서든지 잘 적응하고 꽃을 피우는 식물도 드물다 뜻일 겁니다. 부족함이 없이 잘 조성된 환경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프로 정신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민들레 같은 크리스천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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