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전성기의 최후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뮬란>이 지난 주에 중국과 한국에서 개봉했다. 그러나 디즈니의 야심작이라는 선전포고가 무색하게 관객들의 외면과 함께 초라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실패는 디즈니의 창의성 결여와 함께 중국을 향한 도를 넘은 아부가 큰 역할을 했다. 30년전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런 디즈니를 부활의 길로 이끈 작품은 1989년작 인어공주였다. 이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게 되면서 디즈니는 반등의 기회를 맞았다. 이어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킹(1994), 포카혼타스(1995)까지 디즈니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디즈니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이런 흐름을 이어받아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품이 바로 뮬란(1998)이었다. 중국의 구전 설화를 재구성하면서, 최초로 동양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뮬란은 당시 IMF를 겪고 있었던 한국에서도 80만명에 가까운, 당시로써는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현재, 디즈니는 디즈니 르네상스를 만들어낸 모든 작품들을 하나씩 실사판 영화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 디즈니를 지탱해준 뮬란을 실사판으로 옮기는 것은 어찌보는 당연한 수순이어서, 디즈니사가 만들어낸 이전의 고퀄리티 작품들을 생각하면 뮬란에 대한 기대감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반지의 제왕, 데드풀, 나니아 연대기, 아이언맨 등의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시각효과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웨타 스튜디오’가 뮬란의 시각효과를 맡았기 때문에, 뮬란의 대서사시에 걸맞는 실사판은 어떤 모습으로 옮겨질지 전세계 관객들의 기대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뮬란은 애초 타깃이 되는 시장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뮬란은 남북조 시절 훈족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운 한족 소녀의 전설 <목란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중국 시장 공략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개연성과 치밀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중화사상에 맞춘 서사를 선보이고, 촬영 지역을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정했다. 또, 친중파 배우 유역비, 견자단, 공리 등을 주연 및 주연급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또, 여주인공 아버지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 노골적인 중국 비위맞추기란 비난을 샀다. 게다가 여주인공이 큰 전투를 앞두고 이마에 그리는 문양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의 화웨이 상표와 흡사하다. 그리고 디즈니는 영화 엔딩 크레딧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신장 지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이처럼 애초 기획 단계부터 반중 기류가 강한 나라들에서의 흥행을 포기하고, 중국 흥행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노골적으로 아부한 뮬란의 성적은 중국에서조차 초라하다. 중국 국내 제작 애국영화 ‘팔백’에 밀려 흥행성적 2위에 만족해야 했고,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 평점 사이트 더우반에는 겨우 4.7점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도 이보다 높은 7.8점을 받았다. 서사 역시 설득력이 없고 공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생활양식, 사회 분위기, 정치문화 등에 대한 역사적 고증 없이 할리우드에서 서구 중심적으로 각색한 설정들만 뒤섞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2000년대 들어와서 오리지널 월트 디즈니 프랜차이즈에서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캐리비안의 해적>과 <겨울왕국> 시리즈 뿐이다. 디즈니가 고유의 창조적 콘텐츠 기획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여기에 디즈니는 정치적 난관에도 부딪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인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디즈니가 중국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에 고운 눈으로 비칠 리 없다. 최근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은 거대한 시장 때문에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디즈니를 작심 비판했다. 디즈니가 중국에 ‘머리를 조아린다(kowtowing)’라고 표현하며 미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 대표적인 예로 바 장관은 디즈니의 자회사인 영화제작사 마블스튜디오를 지목했다. 그리고 2016년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제작 당시 수도승의 인종이 당초 티벳 사람이었는데 셀틱족으로 바뀐 사실을 꼬집었다. 당시 이 영화의 각본 작가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티벳 사람을 캐릭터로 내세우면 중국 정부가 영화 상영 금지령을 내려 10억 관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디즈니의 중국 바라기는 영화 뿐만이 아니다. 디즈니는 7번째 테마공원을 중국에 건설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2018년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실적은 전망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투자 확대를 계획하는 것은 디즈니가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낙관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 시장을 디즈니랜드와 리조트 발전을 이끌 새로운 견인차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1955년 처음 문을 연 디즈니랜드 리조트는 현재 전세계 6곳에 분포해 있다. 일본 도쿄와 프랑스 파리에 한 개씩, 본고장 미국(올랜도, 애너하임)과 중국(홍콩, 상하이)에 각각 두 개씩 있다. 그러나 디즈니의 방문객들은 해마다 늘고 있고, 수용인원에 비해 수요가 너무 많다. 현재 중국민 2억명이 매년 테마공원을 찾고 있어 앞으로 중국은 테마공원 방문객 규모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테마공원 시장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의 마음은 중국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디즈니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수익 추구에 몰두하다, 원작 애니메이션 전반에 표현된 자기 이해와 열망 모티브를 잃어버렸고, 이로 말미암아 뮬란은 중국의 평작 무협영화 수준의 서사와 연출을 보여주며 평가와 흥행 양면에서 실패를 자초했다. 콘텐츠 기획력이 약화되던 중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분명 난관에 처해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초 중국 흥행에만 집중했던 디즈니 프로덕션은 고질적 창의성 결여, 기획력 부재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디즈니의 중국 맞춤용 영화 제작은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13억 인구를 포섭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뮬란의 저조한 성적과 평가로 확인된 것처럼, 초심을 잃고 수익에만 몰두하는 문화예술 활동은 끝내 그 예술적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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