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은 노벨상 발표 시즌이다. 올해 120회를 맞는 노벨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학 또는 의학, 평화, 경제학 등 6개 부문이 있는데, 이번주부터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 화학 등 과학 분야 수상자를 먼저 공개하고 문학, 평화, 경제학상을 이번 주말에 마지막으로 발표한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국 언론에는 한국에서 왜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지를 다루는 내용이 단골메뉴처럼 등장한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한바 있지만, 노벨 과학상은 국가의 기초과학과 원천 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수상자 한 명쯤 나와주길 바라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나노결정 합성을 공동 연구한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화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과학 분야에서 한국인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노벨 과학상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들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다. 1901년 첫 시상 이후 일본은 세계에서 5번째, 21세기 이후로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4년부터 2016년에는 3년 연속으로 물리, 생리의학 분야의 수상자가 나왔고 재작년과 작년에도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다. 전체 수상자 수로 보면 아시아에서 1위이고, 과학에 한정할 경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다. 이렇다 보니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평화상뿐 아니라 과학 분야 수상자가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은 왜 아직인가 하는 지탄이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노벨상에 강할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에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군사기술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시작으로 많은 유학생을 서양에 보냈다. 이들은 차후 일본의 기초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다. 메이지 유신을 근대화 교육이 시작된 기점으로 본다면 일본은 근대 교육제도를 한국보다 70~80년은 빨리 도입한 셈이다. 또, 1990년대 초에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정기적으로 과학기술 계획을 세워 과학분야를 집중 지원해왔다. 2001년 과학기술 기본계획에서는 ‘50년간 30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목표한 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며 노벨상의 산실로도 불리는 '이화학 연구소'만 하더라도 1917년에 설립돼 100년을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전쟁과 식민지 건설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기도 했다.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만주 731부대를 지휘했던 과학자들은 일제 패망 후에도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일본의 노벨상 성과를 생체 실험 연구 덕으로 돌리는 건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과 식민지 개척이 일본 과학 발전에 일으킨 상승효과는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일본의 지방 대학들도 전반적으로 연구 환경이나 구성원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했다고 해서 노벨상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대표적 예가 2002년 학사 출신으로 전례없는 노벨상 수상자가 된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 제작소 연구원이다. 1985년 2월, 비타민 B12의 질량 측정을 준비하고 있던 다나카는 늘 사용하던 아세톤 대신 실수로 글리세린을 시료에 섞어 버렸다. 그는 실수를 금세 알아챘지만, 버리기에 아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시험 삼아 이 시료에 레이저를 쏘아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타민 B12가 이온화되었다. 다나카는 실수에서 얻어진 결과를 놓치지 않고 실험을 거듭했고, 2백번이 넘는 시행착오를 거쳐 고분자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존스 홉킨스 대학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평범한 회사원의 연구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대학원 경력도 없고, 학부 시절 유급할 정도로 평범했던 그의 성취는 단기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사원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패도 용인해준 시마즈 연구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일본대학의 연구실은 마치 가업처럼 제자가 스승의 연구를 끊김 없이 계승한다. 교수가 퇴임하게 되면 후임 교수가 승진해 연구실 전체를 물려받아 연구를 계속한다. 교수와 부교수, 조교수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순수 과학 연구가 시작된 역사가  훨씬 짧다. 인적·물적 투자 규모도 작다. 기초과학보다는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응용 과학에 치중한다는 의견도 많다. 장기적 안목의 연구와 실험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입학 이후 졸업 때까지 취업용 스펙 쌓기에 매달리면서 학부논문이 요식행위가 되어 버린 것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이다.  최근 한국은 좁혀진 국력과 소득 격차, 한류 부상, 역사 문제 등의 여파로 일본을 상대할 가치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을 과소평가 해선 안된다.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아시아 유일의 G7 참여국이며, 그들이 축적한 과학기술과 인프라는 막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가장 껄끄러운 이웃임에도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노벨 과학상은 평가와 선정 과정에 있어 일부 편향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지만 아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분명 아쉬운 대목일 수 밖에 없다. 얼마전 80대 여성 사업가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평생 모은 재산 766억원을 카이스트에 쾌척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카이스트에서 한국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원한다고 했다. 그처럼 과학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회적·정책적 환경이 지속적으로 구축된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도 노벨상 수상이 잇따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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