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년내내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선이 드디어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수요일 새벽은 투표가 마감된 지 12시간이 지난 시각이지만, 그 누구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을 보이고 있다. 우편투표 개표가 더뎌 변수가 많아, 완전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루이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에도 여론조사는 틀렸다. 선거전부터 미국내 유력 여론조사업체들은 한 목소리로 바이든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은 쉽게 넘어설 수는 없어 보인다. 샤이 트럼프(Shy Trump: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 의사를 숨기는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4년 전보다 개선된 모델링으로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던 여론조사 분석 자료들이 또 한 번 빗나간 것이다. 최대 격전지로 예상되었던 플로리다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마지막 여론조사까지 두 후보의 격전이 예상됐던 것에 비해 승패는 싱겁게 가려졌다. 이로 인해 누가 승리하느냐를 떠나 여론조사 신뢰도는 다시 한번 막대한 타격을 입게 돼 전면적인 시스템 개선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수장을 뽑는 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지난 4년동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훗날 역사상 가장 독특했던 리더의 명단에 빠짐없이 등장할 게 분명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파워있는 국가를 가장 특이하게 이끈 대통령이었기에 세계의 이목은 늘 미국을 향했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미국 역사상 가장 특이한 대통령을 잡기 위해 가장 무난한 후보를 내세웠다. 바이든은 비교적 무난하게 정치 경력을 이어온 ‘친숙하면서도 낯선’ 인물이다. 그가 익숙한 이유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정치인으로 살아온 베테랑이자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8년간 동고동락한 부통령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한 번도 일인자였던 적이 없어서인지 그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트럼프의 독주를 막으려는 열망이 미국에서 다소 ‘평범한’ 바이든의 인기를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다자기구 탈퇴, 여성·흑인 비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처 미흡과 본인 감염, 세금 거부 등 다수의 구설수를 남겼다. 반대자와 동맹국 모두를 경멸하고 악마화해왔고, 흑백의 논리로 미국을 두쪽으로 나누었으며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로 전세계도 자기 편과 아닌 편으로 나누어놓았다는 지탄을 하루가 멀다하고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이 막판까지 확연히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층은 생각보다 두터워 보인다. 바이든 후보는 특이한 대통령을 잡기에 너무 평범한 경쟁자이다. 평범한 바이든의 인기를 이렇게까지 올린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도, 언론이 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양대 권위지인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지는 ‘바이든을 뽑아라’,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이라는 사설을 통해 대놓고 바이든 후보를 지지했다. 그렇다면 신문은 특정후보 지지 선언을 해도 괜찮을까? 답은 ‘괜찮다’이다. 신문의 보도 논평 기능에 따른 것인데, 방송과는 달리 이는 신문의 특성이다. 특정후보 지지선언은 신문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그 지지선언은 신문의 지지일 뿐, 보도의 지지는 아니다. 사설을 통해 회사 차원에서 지지후보를 공표하되 보도에서는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실제 WP의 전설적 편집인 벤자인 브래들리도 후보지지선언 사설을 게재한 뒤 보도면은 어디까지나 공정할 것을 약속하며 독자와의 신뢰를 구축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신문도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신문이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한 사례는 없다. 신문들은 주요 선거때마다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이것이 마치 전통인 듯 과시해왔다. 한국의 신문윤리강령을 보면 정치적 평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사설 등 평론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를 표명하는 등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계에서는 저널리즘이 제대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불평부당을 강조해온 관행 탓이라고 말한다. 즉 샤이 저널리즘이다. 겉으로는 공정을 표방하면서, 헌법으로 보장받은 정치적 평론의 자유는 사양해온 것이다. 그러면서 교묘한 수법으로 불공정한 행태로 지지선언 이상의 편파적 보도는 이뤄지고 있어 독자들은 주요 일간지의 성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미국 주류 언론들의 특정후보 지지선언은 부러운 전통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년간 사설을 통해 트럼프 당선 이후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집중 게재했다. 특히 트럼프의 전제주의 행동을 분석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4가지 신호를 규정했다.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의 기본권 억압 등을 조목조목 따지며  트럼프를 반대해 왔다. 워싱턴포스트 지는 트럼프를 향해 현대 최악의 대통령, 축출 추방, 품위 공감 존중의 결여, 계속 분열되는 나라 등의 거침없는 부정적인 표현을 던졌다. 워싱턴포스트 지가 트럼프의 결함과 과오를 직설적으로 찔러댔다면, 뉴욕타임즈는 바이든의 품성과 경험을 들어 대통령으로의 적합성을 강조했다. 이런 미국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보면서 한국 언론도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언론이 맡아야 할 몫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객관주의 프레임을 버리고 좀더 강력한 담론 설정이 필요하다. 특정후보 지지선언은 결코 불공정이 아니다. 전문 지식을 가진 논설진들이 연구 토론을 통해 대통령의 조건과 품성을 평가하고 국민에게 당당하게 알리는 미국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또한 한국 신문이 도전해야 할 과제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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