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지난 11월 15일에 한인기독교교회에서 안나조박의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 나는 안나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고 말할 때에 30년 전의 일을 추억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역하던1990년 여름에 안식월을 맞이해서 사도 바울의 선교지를 자동차로 여행하게 되었는데, 안나는 초등학교1학년, 그리고 큰딸 민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침 일찍 사우디아비아를 출발해서 요르단, 이스라엘 , 시리아, 터키 그리고 그리스까지 가는 여정은 멀고도 험했다. 하루 종일 광야를 달리기도 하고 험준한 산을 넘기도 했다. 그때에 두 딸이 돌아가면서 예배 인도를 했다. 안나는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들을 나열하면서 설교를 아주 잘했다. 우리 부부는 딸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한국 속담에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는데, 그때는 안나가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목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덴버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겠다고 할 때에도 나는 공부를 좀 더 해서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안나가 실제로 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미국 사회가 아직도 여성 목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 목사에 대한 편견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가부장적인 사회 관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더 심한 편이다.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는 만 명이 넘는 여성 목사들이 각처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성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성 목사 안수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은 창조의 질서, 구약의 성직자의 범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바울서신(딤전2:11-15; 고전14:33-34),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하와를 돕는 배필로 지으심은 성 차별이 아니라 성 구별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강조했다(고후5:17). 구원에 차별이 없는데 목회 사역에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고 했다. 구약의 제사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만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모든 사람이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히10:19-20).  그리고 성경이 소개하고 있는 모든 여자가 공회앞에서 잠잠하지 않았다.

 

      구약의 여사사 드보라(삿 4-5), 여선지자 훌다(왕하 22:14), 등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지혜로운 여인들(삼하 14:2; 20:16-22)은 신적 권위와 지혜로 의미 있는 지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신약에도 뵈뵈(롬12:6) 유니아(롬12:7) 브리스길라(행18:2) 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역활을 수행했다. 특히 브리스길라는 성경교사인 아볼로를 데려다가 말씀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행18:25). 나는 여성 목사 안수가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소명의 문제라고 본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제공하지 못했다. 바울과 같이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할 자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는데 누가 그 거룩한 부름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마21:3). 부르심이  없이 목회의 사회적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에 이익의 방편으로 목사가 된다면 이는 하나님앞에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목사는 교회 공동체 위에  군림하는 직책이 아니라 섬김의 직책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제자는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가 편만한 세상에서 자기 부인은 어렵다. 자기 부인은 내 가치와 주님의 가치가 배치될 때에 기꺼이 내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에 내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다. 그 다음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자기 십자가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명령이다.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명은 두 가지 큰 사명에서 파생된 것이다. The Great Commandment(요13:34)와 The Great Commission(마28:19-20)이다. 이 두 가지 명령을 정리하면, 새 계명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주신 말씀이며, 선교위임령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명령을 잘 지키려면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 항해하는 배가 균형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바닥짐을 실고 가듯이, 안전한 영적 항해를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닥짐으로 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자신을 부인하고 사명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길은 험하고 힘들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듯이 미움받는 길이다. 사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했듯이 고난의 길이다. 때로는 순교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주님 안에 목회의 근거와 내용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의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크리스천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그리고 목회도 불가능한 것이다. 목회의 내용은 영혼 구원이다.  말씀을 전할 때에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어야 한다. 목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목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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