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왜 사람들은 복수를 하고 싶어 할까?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복수심을 자극하는 시나리오를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복수심은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감정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복수심을 좋은 감정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복수심은 분노에서 일어나는 충동적인 감정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낳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치명적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간혹 접하는 끔찍한 범죄사건 보도에서 가해자가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혹은 복수하고 싶어서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는 변명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복수심은 사람이 지닌 것 중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수밖에는 없다는 논리에 우리는 동의합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 속에 사소하게 분노를 일으킬 만한 불쾌한 경험을 너무나 자주 마주하며 삽니다. 그럴 때마다 방법만 있다면 이 불쾌함을 소심한 복수로 통쾌하게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간절해집니다. 나를 배신하고 떠나버린 옛 여인에게 멋지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도 듭니다. 잘 사는지 두고 보자는 심사 정도는 양반이고, 옛 여인에게 새로 생긴 상대방이 너무 별로여서 나만한 사람이 없을 거야 하면서 자화자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복수하고 싶어 할까요? 이것이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한순간에 생기는 분노는 언제나 복수심을 불태우게 만듭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잘해주고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는 응당한 해를 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거꾸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호의를 권리인 줄 착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복을 하려는 어쩌면 애먼 곳에 화풀이하는 결과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은 없습니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복수와 관련해 우리는 진정한 자기 마음의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수를 하건 용서를 하건 오직 그 생각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즉 진정한 마음의 강자만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와 여유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지 아는 사람 그는 진정으로 미래에 성공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불타는 복수심에 불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약자에 머물러 있다면 그때의 그 마음은 그 어떤 선택의 여지와 여유도 없는 지옥 그 자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용서는 복수해야 할 대상을 위함이 아니라 고통의 지옥에서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끝으로 성경에서 통쾌한 복수의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99세까지 자식을 낳지 못해서 전전긍긍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것이라는 약속은 받았지만 거의 100세가 가까이 왔음에도 여전히 자식은 없고 설사 가상으로 아내 사라는 80세 가까운 노인에 경수도 끝나고 이제는 소망이 없는 노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브라함이 들판에서 경야하고 있는 가운데 세 사람 나그네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 나그네를 극진하게 대접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 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사람 천사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천사 한분이 아브라함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명년에 곧 100세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옆 텐트에 있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지금 여인으로는 소망이 없는 노파에 불과한데, 네가 여인으로 소망이 없는 경수도 끝났는데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옆 텐트에서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사라에게 왜 비웃느냐! 말씀을 전하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사색이 되어서 급하게 비웃지 않았다고 변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말씀을 전합니다. 명년에 니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이삭’이란 말을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웃음을 웃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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