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를 멈추라는 목소리가 무색하게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폭행이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아시아인 혐오가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출신 전체로 향하면서 한인사회도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아시아 증오범죄를 일으키는 가해자들은 미국내 인종차별로 고통을 겪어온 흑인들이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편의점에서 24세 흑인남성이 금속 막대기를 갖고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이 편의점은 한인 단체장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흑인 남성은 갑자기 과자 선반을 바닥에 넘어뜨리고 막대기로 냉장고와 테이블 등을 때려 부쉈다. 그리고 욕설과 함께 한인 부부를 향해 “중국 새끼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흑인은 자신이 부순 냉장고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꺼내 마시다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같은 날 뉴욕 지하철에서 아시아계 여성과 자녀들에게 침을 뱉은 이 역시 흑인남성이었다. 50대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44세 아시아계 여성과 자녀 세 명에게 큰 소리로 인종 비하 발언을 하며 두 차례 침을 뱉었다. 이 남성은 여성이 든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찬 뒤 도망쳤다. 또, 몇 주 전에는 뉴욕 지하철에서 젊은 아시아계 남성이 흑인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이 흑인남성은 마치 갱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젊은 아시안 남성의 얼굴을 가격하고  그것도 모자라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유유히 지하철에서 내렸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어느 한사람도 나서 말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또, 다음날 뉴욕 도로 옆의 한산한 인도를 걷고 있던 자그마한 체구의 60대 아시아계 여성에게 거구의 흑인남성이 다가와 그녀의 가슴을 가격했다. 그리고는 쓰러진 그녀의 머리를 수차례 짓밟았다. 이 사건이 발생한 곳은 한 호텔 입구였는데, 이를 목격한 호텔 보안요원은 아예 모른척하며 출입문까지 닫았다. 그 보안요원 역시 흑인이었고, 여성을 가격한 남성 또한 어머니를 살해해 복역한 이력까지 밝혀져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미국내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폭증하고 있다. 지난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혐오&극단주의 연구센터에 따르면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는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150%나 증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 부르며 반중 정서를 부추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반아시아 혐오범죄가 급증한 건 미국에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해 3~4월경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아시아계가 증오범죄를 좀처럼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피해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아시안 증오범죄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한국계 미국 스노보드 챔피언인 클로이 김은 이같은 증오범죄에 매일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공개하면서 집을 나설 때는 호신용 무기를 꼭 챙긴다는 사실을 고백해 충격을 주었다.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는 한인과 현지인 등 150여명이 참석해 아시안 증오범죄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뉴욕에서 13선을 한 민주당의 유력 흑인 정치인 그레고리 믹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이 참석해 “나와 같은 인종이 아시아인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걸 보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지난주 콜로라도에서도 아시안 증오범죄를 막기 위한 세미나와 궐기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이러한 발걸음이 아시안들의 향한 증오범죄를 막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 바란다. 그러나 솔직히 중국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시안 전체로 퍼진 이 상황이 우리로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흑인들은 차별을 받는다면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인종차별 금지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여기에 다수의 한인단체도 참여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아시안을 폭행하는 가해자의 많은 수가 흑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캠페인에 동참한 시간이 헛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흑인 너희들의 인권을 위해 캠페인에 동참했었다” 라고 일일이 외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시안이라고 통틀어 지칭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싸잡아 들어가는 느낌까지 든다. 이제는 한인들 스스로 한인사회를 지켜야 할 때이다. 아시안 전체가 아니라 한인만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인사회를 대표하겠다면서 모인 한인회들, 노인회, 노우회는 서로를 향해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고소하면서 증오심을 불태우고 있다. 도가 지나쳐 흑인이나 백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증오와 멸시의 수준을 넘어선 분위기다. 누가봐도 한심한 작태이지만, 이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인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 그 에너지로 한인들을 공격하는 외부 세상과 싸워야 할 때임을 명심하고 자중해야 한다. 한인들끼리도 이리 싸우는데, 타인종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또, 외적으로는 정부 차원에서의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에 아시아계 증오범죄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피해자 구호를 위한 기금 4950만달러를 배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증오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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