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는 물고기를 좋아했다. 냇가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냇가만 가면 작은 소쿠리 하나 들고 하루종일 물고기를 잡아서 놀곤 했다. 지금도 손으로 작은 물고기를 쉽게 잡아올린다. 초등학교 2학년 쯤이었을까? 냇가에서 송사리 몇마리를 잡아다가 자갈도 깔고, 수초도 심은 작고 동그란 어항에다 넣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송사리들이 모두 죽어있었다. 산소를 끊임없이 공급해줄 수 있도록 에어펌프를 설치해줘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구슬프게 울며 송사리들을 앞마당에 묻어주었다. 그 이후로도 나의 물고기 사랑은 계속되었다. 남들은 물고기를 잡으면 어죽이나 매운탕을 끓여먹느라 바쁘건만, 나는 걔네들을 어떻게 잘 키워볼까를 고민하곤 했다. 심지어 미꾸라지도 키워보고, 다슬기, 조개, 가재까지 키워봤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으로 내 자취방에 사다 넣은 것은 어항이었다. 모든 장비를 제대로 갖춘 어항을 좁아터진 자취방에 넣어놓고 얼마나 뿌듯하던지… 미국으로 와서 남편이 우리가 함께 보낸 첫 크리스마스에 준 선물들 가운데 어항이 있었다. 나는 다른 선물들은 건성으로 보는둥 마는둥 하고 온통 신경은 어항을 어떻게 꾸밀까만 생각했다. 틈만 나면 애완동물 가게를 들락거리며 새로운 물고기가 들어왔는지,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처음에 5갤런으로 시작했던 나의 어항은 지난 20년간 10갤런에서 40갤런으로 규모가 커졌다가 관리가 너무 힘들어 다시 10갤런으로 줄였다. 하지만 작은 10갤런 어항에서 키우는 거피(guppy)들이 계속 새끼를 낳으면서 복닥거리는 작은 어항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단칸방에서 줄줄이 낳은 대여섯명의 아이들과 매일 돈 없어서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래! 큰 어항으로 다시 돌아가자! 나는 그때부터 중고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랜 경험에 의해 나는 절대로 새 어항을 사지 않는다. 새 어항을 사게 되면 자갈 등을 깔아놓고 물을 채운 다음 펌프를 최소한 1주일 이상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들이 새 어항에 적응하지 못해 죽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던 어항을 사게 되면 이미 어항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유기체나 박테리아 등이 물고기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인내심이 없는 나는 그래서 중고 사이트를 통해 깨끗하게 쓴 어항,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은 어항을 찾는 것을 선택한다. 기왕이면 좀 큰 어항을 찾다보니 결국 55갤런짜리 대형 어항을 사게 됐다. 근사하게 어항을 꾸며놓고 물고기들을 풀어놓으니 작은 단칸방에 살다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이사간 녀석들이 어리둥절해한다. 잠시 우왕좌왕하는가 싶더니 이내 적응해 유유히 새 어항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나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 어항 앞에 놓은 후 넋을 잃고 어항을 바라본다. 형형색색의 거피들, 몰리, 플라티 등 순둥순둥하고 떼지어서 다니기 좋아하는 열대어들이 수초 사이를 즐겁게 노닐고 있다.  한국에서는 모닥불 같은 것을 피워놓고 멍하니 불을 바라보는 것을 신조어로 ‘불멍'이라고 부른다. 나는‘물멍’을 한다. 어항 속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고기들을 지켜보는 것, 물멍은 내가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풀어내는데 있어서 최고의 치료법이 되어주고 있다. 어항 속에는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나는 그들의 삶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어제 암컷 거피 한마리가 출산을 하다가 죽었다. 배가 남산만해진 거피는 출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치다 탈진한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내가 출산을 돕고자 거피를 다른 곳으로 옮졌지만, 거피는 출산 스트레스 등으로 결국 아침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낳은 새끼 거피 두마리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새끼의 꼬리가 다른 거피 입속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죽음과 맞바꿔 세상에 나온 거피 새끼는 하루를 못 버티고 어미를 따라 서둘러 가버렸다. 새끼 거피가 누군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에도 그 거대한 어항에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나는 다시 물멍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새끼 거피처럼 언젠가는 죽음의 입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누군가가 태어나고 인간들은 삶을 살아가겠지. 물멍은 마음을 비우게도 하지만, 또 그만큼 생각으로 채워지는가 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