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익숙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토론(debate)'이다. 어떤 주제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것, 그것이 토론인데, 고등학교만 들어가도 '토론 클럽(debate club)'이라는 것이 있어서 클럽에 들어가서 토론 연습을 줄창 하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셔널 토론 토너먼트(National Debate Tournament)라고 해서 1947년에 육군사관학교(West Point)에서 처음 시작된 유서깊은 토너먼트도 유명하다. 이런 데서 우승을 하거나 하다못해 입상이라도 하게 되면 대학 입학시 유리할 수 있어서, 한 토론 한다는 전국의 고딩들은 내셔널 토론 토너먼트에 도전장을 내밀곤 한다. 그래서 그런가. 미국 사람들, 토론하는 거 참 좋아한다. 말 많은 것들... 참고로 토론 클럽은 보통 고등학교에 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서도 토론 연습을 시킨다. 몇년전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고등학교 시절 토론으로 붙었다 하면 매끄러운 언변과 설득력으로 상대방을 묵사발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러한 토론 실력과 말빨 덕분에 대선 후보 당시 트럼프나 버니 샌더스와 맞붙었을 때도 토론에 있어서는 늘 우세했었다. 둘째딸 엘리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엘리가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엄마, 부와 권력은 동등해?(Does wealth equals power?)"
"당연하지!"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엘리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권력을 가지려면 돈이 있어야 하거든. 버니 샌더스가 중하층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왜 대통령이 되는데는 실패한줄 알아? 왜냐하면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사람들은 다 돈없는 개털들이었거든. 그래서 10달러씩, 20달러씩 십시일반으로 캠페인 기금으로 기부를 했어. 그런 돈으로 근근히 캠페인을 했던 거야. 하지만 힐러리는 첫번째, 버니 샌더스보다는 부자였고, 두번째, 돈 많은 기업들이 힐러리를 밀어줬어. 버니 샌더스가 100명한테서 2000달러를 모금할 때 힐러리는 1명에게서 10만달러를 받았단 말이지. 그러니 버니가 적수가 되었겠니? 물론 힐러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한 것 역시 첫번째,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부자였고, 두번째, 돈 많은 기업들이 트럼프를 밀어줬거든. 다 그렇고 그런거야. 권력의 배후에는 늘 돈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지. 돈 없으면 권력도 없어."
엘리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번에 토론 수업에서 '부와 권력은 동등한가?'라는 주제로 아미아(Amia)라는 친구랑 맞붙게 되었는데, 나는 '부와 권력은 동등하지 않다'를 가지고 토론을 하게 되었어. 아미아가 잽싸게 '부와 권력은 동등하다'를 골라 버렸거든. 나 이번 토론에서 2점 받으면 어떡하지?"  
나는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부와 권력이 동등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차피 네가 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니까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꾸나."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왜 부와 권력이 동등하지 않은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부와 권력이 동등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인식해오기를 30년. 그런 고정관념을 단 몇분사이에 깨부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는 아미아를 이겨야한다. 나의 경쟁심리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같이 돈 많은 기업가들이 권력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갑자기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권력이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 권력이 꼭 정치적 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다 못해 작은 갑질까지 권력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범위 안에서만 진정한 권력이 될 수 있으므로 돈이 없어도 주변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들도 권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권력과 돈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내용으로 엘리와 연구를 했다. 
엘리는 우리의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리포트를 작성했고 이 주제를 가지고 아미아와 학교에서 토론을 했다.
학교를 파한 엘리가 리포트 종이를 팔랑거리며 기쁜 얼굴로 달려왔다. 
"어케 되었어? 이겼어?"
"응. 4점 만점을 받았고, 반 아이들이 우리의 토론을 듣고 투표를 했는데, 내가 압도적인 표차로 우승했어."
"잘 했어!"
나는 엘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엘리의 토론 리포트를 살펴보았다. 
엘리는 부와 권력이 왜 동등하지 않은지를 3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으며, 종결진술(closing statement)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은 동등하다고 믿고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미 설명했듯이, 부와 권력은 동등하지 않으며, 돈은 당신을 사람 위에 있도록 권력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돈은 사람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돈은 권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은 엘리이며, 저는 돈과 권력은 동등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했어, 엘리! 
하지만 엘리야...
엄마는 여전히 마음 속으로는 부와 권력이 동등하다고 믿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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