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찾기

    큰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때, 아는 분이 고사리를 채취하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태어나서 고사리를 한번도 꺾어본 적이 없던 것은 나는 물론 미국인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고사리가 사슴이나 먹는 풀인줄 알았던 남편은 그것을 따러 굳이 스팀보트 스프링스까지 간다는 이야기에 신기해했고, 기꺼이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당시 2살이었던 둘째 아이를 등에 진 남편과 4살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는 험준한 바위가 자리잡은 스팀보트 스프링스 인근의 산을 헤매고 다니며 고사리를 꺾었다. 어떻게 생긴 고사리를 꺾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남편은 어린 아이를 등에 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고사리를 꺾으며 산을 누볐다. 누가 보면 전생에 심마니인줄 알았을게다.  그 이후로도 한 서너번 정도 봄이면 고사리를 꺾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자라고, 늘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우리는 그후 10년 가까이 고사리를 꺾으러 갈 기회가 없었고, 그렇게 고사리 채취의 기억은 점차 잊혀져가는가 싶었다.그런데 작년부터 친구가 고사리 따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고사리 채취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올해는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단 퍼밋 사무실에 전화해서 퍼밋을 전화로 주문해 우편으로 받았다. 언제 갈 것인지 날짜를 정하고, 친구와 이것저것 준비사항들을 논의했다. 가서 고사리 꺾다보면 배가 고플테니 삼겹살을 먹자는 의견이 나오자, 딸려오는 준비물로 돗자리와 부루스타, 마늘, 깻잎, 밥, 쌈장, 김치, 밥이 줄줄이 딸려왔다. 너무 복잡해! 그래서 심층적이고 거국적인 회의 끝에 점심은 컵라면으로 결정했다. 친구는 부루스타, 나는 가스통을 준비해가기로 했다. 새벽 4시에 함께 만나서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고사리 따러 가는 것이라 긴장이 되어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항상 남편이 함께 가서 고사리 밭이 어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친구와 둘이서 가는 거라 내가 네비게이션을 책임져야 하는데, 길치인 내가 과연 고사리밭으로 그녀를 안내할 수 있을까? 한가득 부담감이 다가오면서 잠이 더 오지 않았다. 간신히 두어시간 자고 일어나 친구를 만나 스팀보트 스프링스로 출발했다. 


    고사리가 자생하는 국유림이 있는 패스에 도착해서 이제 고사리밭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역시 예상대로 난관에 봉착했다. 한참을 헤매다 대충 여기쯤일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찾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이 험해도 너무 험했다. 사실 길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고사리가 군데군데 나고 있긴 했는데, 사람의 발길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의 암벽타기 수준으로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이렇게 힘들수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이 곳이 아닌걸까? 헐떡이며 고사리 하나 꺾고, 암벽 하나 타고, 이런 식으로 죽을 힘을 다해서 1시간 20분 가량 고사리를 꺾어 겨우 비닐봉다리 4분의 3정도를 채웠다. 너무 힘들었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기다시피 하며 간신히 다시 길 위로 올라왔다. 너무 지쳐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하나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비닐 봉지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야심차게 열봉지씩 하겠다고 챙겨온 비닐 봉지 뭉치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심각하게 다음 행보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곳은 너무 힘들고 위험해서 다시 내려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기가 아닌 것 같다고 징징댔더니 남편이 위성사진을 찾아서 대충 여기쯤이 아닐까 하고 빨간 동그라미를 쳐서 문자로 보내왔다. 친구와 함께 대충 구글지도를 맞춰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 그곳을 찾아갔다. 1마일도 되지 않은 지점에 '그곳'이 있었다. 말 그대로 고사리 밭이었다. 평지에 가까운 지형에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눈에 띄는 고사리들만 대충 꺾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운을 첫번째 암벽타기에서 쏟아붓는 바람에 너무 지쳐서 더이상 고사리를 꺾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옛날에 엄마랑 맛있게 먹었던 산미나리가 있길래 친구와 함께 그것도 몇묶음 꺾었다. 친구는 일단 점심을 먹어 힘을 내자고 했다. 친구와 함께 다시 주차장으로 올라와 컵라면을 꺼내들었다. 부루스타를 꺼내고, 컵라면을 꺼내고, 가스를 꺼냈다. 나는 무심하게 물었다. “냄비는?” 친구는 “안가져왔는데?” 했다. 그랬다. 우리는 냄비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컵라면을 만지작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 난감한 침묵이 흘렀다. 마시려고 보온병에 담아온 온수를 컵라면에 부어 바삭한 컵라면을 꼭꼭 씹어먹으며 뱃속에서 라면을 불렸다. 그런데 라면을 먹었는데도 기운이 나지 않아 우리는 결국 지천에 돋아있는 고사리들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 너무 기운을 빼는 바람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사리를 삶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 저거 산미나리 진짜 맞아?” “응. 맞을 걸? 왜?” “맛이 이상해… 우리 남편이 봉숭아 잎 맛이 난대. 게다가 먹고 나서도 입안에 약 맛이 남아있어. 나물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럴리가…!” 결국 그 나물은 산미나리가 아니라 잡초였다. 우리는 얼마 남지도 않은 기운을 고사리에 쏟아붙는 대신 그 쓸데없는 잡초를 잡아뜯는데 썼던 것이다. 친구는 다음날 몸져 누웠다. 그리고 우리의 고사리 채취는 그렇게 극한의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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