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지난 월요일, 아이들과 주립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집 앞에 경찰차가 여러대가 서 있었고 S.W.A.T도 다녀갔습니다. 아라파호 보안관이 저희 집에 오더니 혹시 집에 보안 카메라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바로 앞 세 집에서 소란 소동이 밤에 있었다고 하며 조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 뉴스를 통해서만 들어 오던 일이 집 근처에서 일어났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잘 반응해 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끊이지 않는 범죄와 소동과 총기 사고 등은 이제 우리는 이런 사건들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합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만 하더라도 알라바마, 죠지아, 시카고, 오스틴 등에서 총기 사고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제는 별로 크게 놀라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여러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처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범죄의 문제이건, 인종차별의 문제이건, 가난의 문제이건, 사회적 어떤 문제이건 간에 해결책은 교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교육은 해결책의 어느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교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D.L. Moody는 교육이 여러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못과 나사를 훔치는 도둑에게 교육의 기회를 줘서 대학을 보내면 철도 전체를 훔치는 사람이 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교육만을 외친다면 범죄자들은 교육을 받아 더 효율적인 범죄자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교육이 아니라 무엇을 교육하는가이고 필요한 교육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 대한 교육입니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입니까? 누가 판단해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나요? 이 세상은 그 판단은 각자 개인이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판단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각 개인의 감정에 의존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옳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옳고 그름은 각자의 생각과 감정대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학교 학우의 물건을 빼앗고 그것을 되찾으려는 그 학생을 살인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죽은 학생의 부모님은 그래도 한 번 더 그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어린 학생들에게 한 번 정도 더 기회를 주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 학생들의 태도는 그 어떠한 뉘우침이나 반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낄낄대며 웃고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저지른 행동이 악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분은 좋으니까 그들에게는 그것이 옳은 것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기는 하였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갑니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우리는 살인, 간음, 학대, 차별, 다툼, 미움 등을 일삼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현재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아담과 하와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주셨습니다. “당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16-17, 새번역).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기록되고 있는 인류의 역사는 죄가 있고, 죄가 늘어나고, 죄가 가득 찬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셔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도록 하셨는가? 하지만 이것은 그 나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선과 악의 기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선과 악의 기준을 순종하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정하고 나아갈 것인가? 내가 스스로 정하고 나아가면 선과 악의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비극의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우리에게 선과 악의 기준, 옳고 그름의 기준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절대적 기준을 인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절대적 기준을 가르치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육,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교육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절대적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살아가며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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