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가수 노사연씨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수 노사연씨의 노래말을 보면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운명 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누구나 뜻하지 않게 이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별이란? 어떠한 존재와 헤어짐을 말합니다. 주로 한쪽이 떠남으로써 이루어지나, 전역, 소집해제, 진급, 이직, 해고, 퇴직, 자퇴, 퇴학, 졸업, 이사, 이민, 사망 등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간에서 한쪽이 먼저 세상을 일찍 떠나버림으로써 이별하게 되는 상황은‘사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사별의 감정에 대한 유래는 정말 오래전부터였는데 사랑하는 임과의 사별을 아름다운 한으로 승화시키는 시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발라드의 단골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발라드의 가사가 이별의 그리움과 슬픔을 더 다양하고 잘 표현한 거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현대에 오면서 이별에 대한 개념은 커플의 헤어짐으로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평범한 이별이라면 최근 발전된 SNS로 인해 이별을 해도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별을 해도 이별을 해도 이별한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이별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후유증도 심각하고, 특히 연인과의 헤어짐은 정신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을 크게 해칠 수가 있습니다. 깊이 정들었던 짐승이나 고향산천 같은 자연과의 헤어짐도 이별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으나, 이별이 문제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끼리의 헤어짐입니다. 흔히 생리사별이라 하여 살아 있는 사람끼리 헤어지게 되는 생이별과, 한쪽은 죽고 한쪽만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사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므로 사별이 생이별에 비하여 빨리 체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생이별은 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미련 때문에 사별의 애통을 능가하는 길고 긴 정한을 뒤에 남깁니다. 그래서 보통 이별이라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여 눈물을 머금고 서로 헤어지게 되는 생이별을 가리키고, ‘이별’을 뜻하는 다른 말로는 그 한자를 뒤바꾼 별리가 있으나, 그것은 ‘이별’이 함축하고 있는 정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또, ‘전별’‘전송’·‘송별’ 같은 낱말이 있으나, 이것들은 이별하는 사실보다 이별하기 위하여 잔치를 베푼다거나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배웅’이라는 낱말도 있는데, 이것 역시 ‘헤어짐’보다는‘보냄’의 뜻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고‘이별’에 맞설 만한 다른 낱말로는‘헤어짐’을 꼽을 수 있지만, ‘이별’만큼 널리 사용되는 안정된 낱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별’이라는 낱말이 풍기는 정서적 의미는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참으로 각별한데 그것을 정과 한의 관계를 통해 밝혀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정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과 ‘한’입니다. ‘정’은 한자어 정에서 비롯된 말로, 단순한 사랑이 아니고 미움과 노여움이 공존하는 사랑입니다. 흔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서 ‘미운 정’이라는 모순 감정의 표현은 ‘정’이 증오까지도 수용하고 또 초월하는 사랑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한’도 한자어 한에서 나온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도 단순히 억울하고 서글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가볍게 저버릴 수 없는 애달픈 소망을 간직한 뉘우침입니다. 이처럼 한국 사람은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정’에 의하여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정으로 이별하게 되면 지나간 세월 못다 이룬‘정’이 헤어진 사람들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앙금처럼 가라앉습니다. 그러므로 이별은‘정’과 ‘한’이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고. 과거의‘정’이 미래의‘한’으로 바뀌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새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하여 서로 분리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이별의 분기점을 거치고 나면, 만남 속의 온갖 잘잘못과 옳고 그름을 복합적이고 포용적인 사랑의 개념으로 용해해왔던 과거의 ‘정’이 뉘우침과 억울함이나 애달픔과 그리움 등으로 얽혀진‘한’으로 탈바꿈합니다. 그러므로 이별은 한국 사람이 지닌 ‘정한’의 정서를 만들어내고 존속시키는 온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으로 결론을 맺으면 우리는 반드시 만남을 통해 누구나 이별의 통보를 받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망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은 또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에서 어떤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만난다는 사실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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